은행 PB센터 찾는 젊은 '코인 거부'들

by김유성 기자
2021.09.20 09:30:00

4년전과 비교해 '투자 식견' 지닌 이들 늘어
수익 일부 고정 자산으로 분산 투자하려는 수요↑
결국 다시 코인으로 돌아가는 수순 밟기도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확실히 4년 전과 비교해 코인으로 돈 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어요.”

국내 한 시중은행 PB센터 이 모 팀장은 두달전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제 막 서른살을 넘긴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코인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이라면서 이중 얼마를 분산투자하면서 관리를 받고 싶다는 전화였다.

이 팀장은 금융 자산 5억원 이상 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자산관리 서비스를 한다고 안내해줬다. 그는 곧장 PB센터가 있는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5억원을 입금했다.

이 팀장은 “코인으로 돈 번 사람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지, 실제 고객으로 대하게 될줄은 몰랐다”면서 “벼락부자까지 아니더라도 코인을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는 신흥 고객들이 꽤 늘었다”고 말했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실제 금융자산 30억원 정도를 갖고 있는 부친을 둔 A씨도 코인으로 수익을 짭짤하게 거뒀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1억원 정도를 떼어 비트코인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때는 2019년 가을 정도. 독일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세계 금융 시장이 뒤숭숭하던 때였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약 9000달러가 안되던 때였다. 이 가격은 올해초 5만달러까지 올랐다. A씨와 A씨 부친은 이중 일부를 팔아 투자 원금의 이익을 나눠 가졌다.

강남의 한 PB센터에도 코인으로 돈을 번 젊은 투자자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다. 이곳 PB센터의 PB는 “지난 4년전과 비교해보면, 투자 중 수익 일부를 고정자산에 분산 투자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면서 “자신이 올린 수익을 어떻게 하면 보다 오래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일부는 분산투자를 위해 PB센터를 찾는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단순히 코인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가진 투자자가 많았다면, 근래에는 코인으로 번 돈을 안전하게 투자하려는 투자자가 많아졌다”면서 “투자에 대한 기본적인 식견을 갖춘 투자자가 늘어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코인 투자 붐을 타고 성인들 상당수가 암호화폐에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7월 한화자산운용과 암호화폐 정보포털 쟁글이 성인 남녀 53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디지털 자산 투자 설문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57.9%가 암호화폐 투자 경험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20~30대가 44%로 가장 높았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100만~1000만원 비교적 소액을 투자했지만, 응답자 중 8%는 1억원 이상 투자를 한다고 응답했다. 대출 등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 비율은 2% 내외였다.

다만 PB센터 차원에서 고객들에게 암호화폐 투자를 권유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암호화폐로 돈을 번 이들이 자산관리에 대한 조언을 물으러 오는 경우는 있지만, 금융사들이 나서 암호화폐 투자를 권유하지는 않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큰 문제가 변동성이다. 하루에도 수십 %의 수익과 손실을 볼 수 있다는 특성 탓에 코인은 ‘위험한 자산’으로 통한다.

대표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올해초 급등했지만, 5월 한달 동안에만 37.5% 급락했다. 금융 당국도 이들 코인의 높은 변동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비트코인 시세 (달러)_
다른 강남의 PB센터 김모 팀장은 “PB센터를 오래전부터 이용하는 자산가들은 얼마만큼 더 자산을 늘리기보다는, 얼마나 오랫동안 꾸준하게 수익을 내면서 자산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높다”면서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코인 투자는 자산가들에게 맞지 않는 자산에 가깝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결국 코인의 높은 수익률을 본 이들은 PB센터에서 상담을 받고난 후에도 다시금 코인을 찾는다”면서 “단기간 고수익을 맛본 투자자들은 그 자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산가로서 성장하려면 그 투자의 틀에서 나와야 하는데 쉽지가 않은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