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윤민하 기자
2021.07.18 09:00:11
거리두기 강화로 젊은층 생활 반경 축소
유명 도심·관광지 방문 대신 ‘슬세권’ 선호
20대 “동네 산책하며 새로운 매력 발견”
전문가 “유흥지, 도심에서 거주지로 이동 중”
이재준(25·남)씨는 최근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 카페 투어를 그만뒀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대신 동네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개인 카페를 찾는다.
이씨는 "그동안 사람이 많이 몰리는 유명하고 예쁜 카페를 선호했지만 감염 우려가 커 집 근처 카페를 방문하게 됐다"며 "오래 머물지 않고 커피를 포장해 나올 뿐인데도 꾸준히 방문하니 벌써 단골이 된 기분"이라고 전했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가 동네 상권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코로나19 4차 유행에 따라 방역 조치가 강화되며 생활 반경이 좁아진 결과로 풀이된다. 코로나 여파로 동네 상권의 주 이용자가 젊어지는 모양새다.
이들은 편한 복장을 갖춰 입고 ‘슬세권(슬리퍼처럼 편안한 복장으로 갈 수 있는 생활권역)’을 탐방하는 매력이 핫플 못지 않게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세대 특성을 발휘해 ‘하이퍼로컬(hyper-local·좁은 지역 중심 네트워킹) 서비스’도 적극 이용한다.
“여행 대신 동네 친구와 산책 나서죠”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는 도심 명소를 찾아 ‘인증샷’을 남기던 젊은층이 장거리 외출을 줄이고 동네 탐방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이재준 씨는 “여행이 취미였지만 (코로나19 이후) 대중교통 이용이 꺼려졌다”며 “동네 지인을 만나 함께 산책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전했다.
그는 “오래 산 동네인데도 늘 같은 길만 다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코로나19 이후 동네를 더욱 자세히 살펴보게 됐다. 여행을 가지 않고도 새로운 곳을 방문한 느낌”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씨는 “예전엔 가지 않던 동네시장에서 생필품을 산다”며 “방역 조치가 강화돼 답답하지만 동네의 매력을 새로 알게 돼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지난 3월 출간한 저서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오프라인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키웠다”며 “여전히 오프라인만이 줄 수 있는 경험과 감성, 커뮤니티를 요구하다 보니 ‘로컬’에 모이게 된다”고 분석했다.
‘당근마켓’ 이용하며 이웃 간 교류 활성화
하이퍼로컬 서비스 또한 MZ세대가 슬세권을 즐기는 핵심 수단이다.
이는 좁은 지역을 중심으로 동네 경제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다양한 플랫폼 사업을 뜻한다. 동네 기반의 △중고거래·배달 플랫폼 △지역 맞춤형 구인·구직 서비스 △동네 정보 공유 커뮤니티 등이 그 예시다.
부산에 거주하는 김희진(34·여)씨는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2년째 이용하고 있는 ‘프로 당근러’다.
김씨는 “주변 동네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거래하기 때문에 멀리 나가지 않아도 돼 편리하다”며 “생활하며 부딪히는 일상 속 문제들이 당근마켓을 통해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김씨는 "당근마켓 내 동네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동네생활 게시판’ 덕에 병원·가게·맛집 정보 등 몰랐던 동네 정보를 알 수 있다”며 "당근마켓을 통해) 주민 간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꾸안꾸 느낌 더한 슬세권룩은 필수”
슬세권을 거닐 때 입기 적당한 옷차림을 가리키는 이른바 '슬세권룩'도 MZ세대 사이 인기다. 활동성을 갖춘 편한 옷으로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느낌을 내는 게 핵심이다.
통 넓은 바지와 늘어난 티셔츠, 샌들과 슬리퍼로 대표되는 슬세권룩은 자유분방함과 개성이라는 젊은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다. 타인의 시선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나만의 느낌’을 연출하고자 하는 것.
편한 반팔 티셔츠에 면 반바지, 나이키 슬리퍼의 조합을 즐긴다는 김세은(24·여)씨는 슬세권룩에 대해 "회사나 학교에는 입고 갈 수 없는 아주 일상적인 복장"이라며 "코로나19 확산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터라 간단한 외출을 할 때 슬세권룩을 자주 입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화장이나 헤어스타일 손질을 하지 않아도 돼 외출 준비 및 환복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이왕근(25·남)씨는 "편하고 통풍이 잘 되는 옷에 샌들 차림을 선호한다"며 "면접 등 격식을 차리는 자리가 아니면 무조건 슬세권룩을 입고 외출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변에서 '집에서 입는 차림이냐'는 소리를 들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게 MZ세대의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슬세권, 젊은층 선호하는 공간 특성 갖춰”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재택근무·원격수업 등 코로나19 여파로 (젊은층이) 대학교 주변 같은 유명 도심지를 방문할 기회가 줄었다”며 “이를 동네 상권이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슬세권에서 젊은층이 선호하는 공간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젊은 세대는 쇼핑과 놀이가 가능한 ‘핫플’을 찾는다”며 “이같은 유흥지가 (도심에서) 거주지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성수동·압구정동이 그 예시”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동네는 젊은이들에게 ‘편의점 앞 맥주 한 캔’으로 대표되는 낭만적인 공간”이라며 “이를 SNS에 올리는 등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스냅타임 윤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