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최종구의 신관치(新官治)

by송길호 기자
2017.12.07 06: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1980년대 초, 자율 안정 개방의 물결속에 금융을 독자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단행됐다. 은행 민영화, 금리 자율화, 자본시장 국제화…. 압권은 단연 금융권의 인사 독립이었다. 강경식 재무부장관은 1982년말 은행법 개정을 통해 재무부 장관의 은행 임원 선임 승인권과 파면권을 전격 폐지했다. 장관 스스로 은행 임원 인사권을 내던진 셈이다. 30년 넘는 관치금융과의 전쟁, 바로 그 서막이다.

“은행권 인사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 외환위기의 파고에 휩싸인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당 연석회의에서 은행 인사 불개입 원칙을 천명한다. 외환위기의 원인중 하나를 관치금융으로 보고 은행에 자율인사의 관행을 정착시키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당시 강봉균 정책기획수석은 생전에 이렇게 회고했다. “관치금융 척결은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인사권 행사를 막는데서 시작된다.”

관치금융은 고도압축 성장시대의 산물이다. 철옹성과도 같다. 관치금융 탈피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대통령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그 복원력은 경이롭다. 정치권력과 관료사회의 저항, 뿌리깊은 갑질 관행 때문은 아닌지 모른다. 이를 적폐로 규정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금융권 인사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셀프연임, 이사회 자기편 배치, 경쟁자 견제와 배척, 그에 따른 직무유기…’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금융사 지배구조에 대한 작심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기관장 인선이 진행중이거나 목전에 있는 기관들은 비상이다. 일부 기관장의 연임 가도엔 제동이 걸린다.



물론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그 자체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금융지주사들의 ‘경영 승계 프로그램’이 일부 오작동하는 현실에서 일견 타당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의 칼자루를 쥔 금융당국수장이 이를 직접 질타하는 건 분명 결이 다른 문제다. 금융기관이나 협회의 기관장 선임은 주주나 이사회의 고유권한. 내부 갈등이 표면화된 상태도 아니고 범법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도 아닌데 관여할 명분은 약하다.

금융산업은 언제나 관치의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의도야 어떻든 금융위원장의 메시지는 관의 부당한 인사개입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미 연임을 위해 뛰고 있던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간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며 연임 포기를 선언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셀프연임’ 논란이다. KB노조, 하나금융 노조에서 제기한 프레임이다. 현장 노조가 애드벌룬을 띄우면 시민단체나 노동단체가 확대 재생산하고 청와대는 이를 받아 금융위에 거꾸로 압박하는 꼴이다. 노조→ 청와대 → 금융위로 이어지는 노치(勞治)와 관치(官治)의 이중주다.

적극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인사 가이드라인을 주고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건 변형된 관치일 뿐이다. 이미 이 정부에서 진행된 각종 기관장 인사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이전 정부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각종 물밑작업을 통해 인사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모습. 관치금융을 청산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 정부에서도 퇴행적 관행이 기승을 부리는 건 유감이다. 관치금융 척결의 메아리, 여전히 공허한 울림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