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판’ 가상화폐 더 커질라..금융당국, 야당에도 청부입법 ‘똑똑’
by노희준 기자
2017.11.23 05:30:00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여당에서 ‘찬바람’을 맞은 금융당국이 급팽창하고 있는 가상화폐를 규제하는 ‘청부입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야당에도 문을 두드리고 나섰다. 국회·정부 관리 사각지대에서 방치돼 있는 가상화폐 시장의 규제책 마련에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2일 금융당국 및 국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과 가상화폐 규제 입법안 마련을 위해 협의 중이다.
금융위는 가상통화거래소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가상통화거래를 업으로 하는 행위(자)를 유사수신행위(자)로 취급하는 가칭 ‘유사수신행위 등 규제법’을 의원입법 형태로 제출하는 방안(청부입법)을 준비해왔다. 법안 내용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마련하되 국회 의원실과의 협의를 통해 국회의원 이름을 빌어 제출하는 방식이다.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적용돼 온라인 쇼핑몰처럼 통신판매업자로 신고만 하면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 중에서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금융당국이 야당의원과의 협력 모색에 나선 셈이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정부안이 가상화폐 시장의 ‘지원책’보다는 ‘규제책’에 가까운 내용이라 법안 발의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준비 중인 법안은 가상화폐 거래소를 준유사수신행위로 규정, ‘원칙 불법 예외 허용’으로 다루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유사수신은 금융업으로 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으면서 원금을 보장하며 자금을 수신하는 불법행위다. 결국 고객자산에 대한 별도예치 등 소비자보호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가상통화업자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불법업자로 취급한다는 게 금융당국 방침이다.
이는 여당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상화폐의 거래, 매매, 중개 등을 할 때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도록 해 ‘제도권 포섭’을 추진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과 다르다. 가상화폐 업계 관계자들은 박 의원 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이 9월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통화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 회의을 열고 가상통화 대응방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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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박 의원도 금융당국의 입장 수용 여부 및 법안 방향에 대해 가닥을 잡지 못 했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투기 및 유사수신 문제 등에 대한 규제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가상화폐에는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대표기술이 사용되고 있어 섣부른 규제 역시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당과 금융당국 입장이 엇갈리는 등 입법 논의가 탄력을 받지 못 하는 사이 가상화폐 시장은 코스닥 시장 규모를 넘어 튤립버블에 비견될 정도로 무질서하게 팽창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서는 거래량 폭주에 따른 서버 다운으로 접속 불능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코인을 제때 매각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대규모 피해를 입었다며 집단 소송을 준비중이다.
규제 공백을 틈타 해외 가상화폐 업체까지 국내 시장에 밀려오고 있다. 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렉스은 국내 업체 두나무와 협력해 지난달에 가상거래소 업비트를 출범시켰다. 일본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포인트도 비트포인트코리아라는 한일 합작 법인을 만들었다. 중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오케이코인도 다음달 한국에 진출한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가상화폐 토론회에서 “일본과 같이 가상화폐 거래소 등록제도를 정착시키는 등 거래소 안정성 제고와 투자자보호를 위한 제도 구축이 필요하고 성급한 규제나 금지보다 건전한 생태계 구축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