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인경 기자
2017.04.14 05:00:00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일본에서 가장 작은 현인 카가와(香川)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나오시마(直島)는 둘레 16km에 불과한 섬이다. 구리 제련소로 먹고살던 이 섬은 1980년대 구리 가격 폭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환경 오염도 심각했다. 결국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갔고 빈집이 속출했다. 인구는 200여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러나 이 섬을 살린 것은 다름 아닌 ‘예술’ 이었다. 1985년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그룹 회장은 나오시마 땅을 산 후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 개조를 맡겼다. 건축가의 손이 닿으며 나오시마의 헌 집들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했고 나오시마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뜻을 모았다. 그 결과 2017년 현재 나오시마의 인구는 3000명으로 늘었고 나오시마가 카가와현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도 나오시마에 설치된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앞에서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을 왕왕 볼 수 있다.
대만 제2의 도시인 가오슝(高雄)은 오래된 항구 물류창고들을 보얼예술특구로 바꿔 도시에 숨을 넣었다. 중화권의 전통 예술품이 아닌 현대미술 작품과 각종 조형물을 설치한 이곳은 외국인은 물론 현지인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전국 각지에서 재건축·재개발이 한창이다. 30년이 되어 버린 서울 강남은 낡은 중층 아파트를 초고층으로 바꾸겠다고, 강북의 빌라촌은 이번에야말로 대형 건설사가 짓는 단지로 변신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방에서는 컨벤션센터나 한류 관광센터 등을 유치하고 널찍한 도로를 깔겠다고 혈안이다. 지난 20~30년간 개발 일변도를 걸어온 한국 부동산 개발 역사를 되풀이하는 셈이다.
도시 재생 사업은 단순히 개발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도시를 살리고 특성을 찾는 과정이 돼야 한다. 그래야 일본의 나오시마나 대만의 가오슝에 내·외국인이 오듯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활력을 찾게 된다. 이 과정에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지자체나 정부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중요하다.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주자들의 ‘도시 재생 방안’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색일까. 부동산만이 아닌 문화 측면에서 도시 재생을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