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②조장옥 회장 "정치 논리로 경제 다루면 안된다"

by신정은 기자
2016.12.14 06:00:00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韓문제점 해결할 열쇠
"대통령 권한 집중되면 부작용 만들어"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 겸 서강대 경제학 교수.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신정은 기자] “고성장 시대에서 경제체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시장의 기능이 어느 정도만 갖춰져 있으면 국가가 성장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고성장이 끝나고 저성장 시대가 오면 그때부터 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 문턱에 섰습니다.”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김대건관 집무실에서 만난 조장옥(64·) 한국경제학회장 겸 서강대 경제학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애독서로 추천했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A.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가 집필한 이 책은 세계의 역사를 분석해 제도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 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경제학회는 6.25 동란 당시였던 1952년 부산에서 소수의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학문적 토양을 마련하고자 창립했다. 현재는 국내 5000여명의 경제관련 학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학문적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애서가인 조 회장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지난 2013년 안식년 때 홍콩에서 읽었는데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 책 첫 부분에 미국 애리조나주와 멕시코 소노라주 주민이 담장 두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묘사가 나온다”며 “제도의 차이로 같은 지역에 사는 같은 민족이라도 빈부 격차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완벽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제도를 갖췄지만, 멕시코는 지나친 정부의 개입과 심한 부패로 인해 국민들이 높은 경제 환경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책은 한국과 북한의 해방 전후 체제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조 회장은 “한국과 북한은 전혀 다른 제도로 인해 경제성과가 달라졌다”며 “제도가 빈부 격차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제도는 저성장 시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조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체제를 유연하고 가볍게 변화해야 한다”며 “외부 충격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해야할 때”고 말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경제제도를 크게 포용적(inclusive)인 것과 착취적(extractive)인 것으로 구분 지었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사유재산이 확고히 보장되고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공평한 경쟁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그 반대인 착취적 경제제도는 말 그대로 한 계층의 소득과 부를 착취해 다른 계층의 배를 불리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조 회장은 “한국은 포용과 착취 그 중간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착취적 제도가 대통령과 지도자의 권력을 집중시키고, 여기서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회장은 개헌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지난 여섯 번의 대통령이 말년에 좋지 않은 모습으로 정치권을 떠났다”며 “그 깨끗하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고, 경제 성장을 외치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역대 대통령이 자격이 없던 게 아니고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을 줬기 때문”이라며 “이건 제도의 문제다. 우리 제도가 좀 더 포용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이런 점에서 ‘중국이 장기적인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조했다. 조 회장은 “중국이 포용적이지 않는 체제 하에 저성장에 접어들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며 “시진핑 주석이 임기 10년을 채우고 5년을 더한다면 굉장히 인기없는 지도자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중국은 개방을 외치지만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다. 약 10년 뒤에는 중국이 제도적 한계를 느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좋은 물건을 팔고 인센티브를 느끼게끔 해야하는데 아무리 잘 만들어도 중앙당이 허가하지 않으면 그 물건을 팔 수 없는 착취적인 시스템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뜻이다.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 겸 서강대 경제학 교수. 사진=방인권 기자
조 회장은 수십년간 경제학을 다뤄오면서 경제가 좋은 방향으로 가려면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단기적인 것이 집중해 경제 운용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장률 0.5%를 올리기 위해서 재정정책이나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한다면 재정건전성만 나빠질 뿐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산업별 연구개발(R&D)에 투자를 하는 등 미래지향적으로 경제를 개척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마음도 편치 않다. 그는 “결정이 쉽진 않았겠지만 구조조정을 좀 더 빨리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세부적으로 잘 조절했다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긴 안목으로 경제를 보면 그게 선진국”이라며 “정치논리에 의해 경제를 다루려고 하면 안된다”고 꼬집었다.

조 회장은 또 최근 국회의 법인세 인상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조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가 자유무역협정(FTA)에 손대기는 힘들어도 법인세 인하는 하리라고 본다”며 “그렇게 되면 많은 미국 기업들이 자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 인상을 논할 것이 아니라 경제를 살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52년생으로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퀸즈대, 홍콩 과기대 등에서 경제학을 가르쳤으며 현재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이자 제46대 한국경제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계량경제학회장(2008~2009년), 한국금융학회장(2010~2011년)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거시경제학, 한국경제의 현황과 문제(공저), Smart 시장경제(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