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기대했는데…상투 잡은 밀양 투자자들

by정수영 기자
2016.06.23 06:00:00

朴대통령 공약 후 토지거래 급증
年 1만건 훌쩍…외지인이 60%
업계 "김해 발표 후 매수문의 뚝 호가 최소 30% 내려야 팔릴 것"
기덕은 토지거래허가구역 묶여 매물 급격히 쏟아지지 않을 듯

ⓒ그래픽 = 이데일리 이동훈
[이데일리 정수영 정다슬 원다연 기자] “어제는 전화도 많았는데, 오늘은 전화가 한 통도 없어요. 다들 패닉(공황) 상태에 빠진 거죠. 내일부터는 매물이 쏟아질 테고, 직전 호가(주인이 부르는 가격)보다 30% 정도는 낮춰야 팔리지 않을까 싶네요.”

경남 밀양시 가곡동 J공인 대표의 말이다. 정부가 지난 21일 영남권에 새 공항을 짓는 대신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을 선택하면서 유력 후보지로 부상했던 밀양지역 부동산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이번 결정으로 밀양 하남읍 일대 토지에 투자한 외지인들의 손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밀양시 토지 거래량은 박근혜 정부가 2012년 말 대선 당시 공약으로 영남권 신공항을 들고 나온 이후 꾸준히 늘었다. △2013년 8563건 △2014년 9921건 △2015년 1만 1706건 △올해 1~4월 4652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연 58~60%는 밀양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외지인들이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땅값도 급등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였던 밀양 하남읍은 지난해 땅값이 3.3% 올랐다. 밀양 전체 땅값 상승률 평균치(2.1%)보다 1.2%포인트 이상 웃도는 수치다. 2014년까지만 해도 3.3㎡당 15만~20만원 선에 거래됐던 밀양 하남읍 일대 농지는 최근 들어선 20~22만원 선에서 거래대 두 배 가량 올랐다.

신공항만 믿고 밀양 일대 땅 매입에 나선 투자자들의 손해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약 12년 전부터 밀양에 내려와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L공인 사장은 “2011년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 때도 호가가 20% 넘게 빠졌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이 오른 만큼 최소한 30%는 떨어진다고 봐야 하는데, 대부분 외곽지역이나 농지로 외지인들이 투자한 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아직 포기하기 이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중개업소에서 만난 동네 주민 박모씨는 “2011년에 대통령이 영남권 신공항 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했지만, 그 다음해 대선 때 공약으로 다시 나오지 않았느냐”며 “다음 대선 때는 또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가덕도는 그나마 밀양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영남권 신공항 부지로 밀양 쪽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매수세가 많이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 인근 B공인 관계자는 “가덕도는 신공항 얘기가 나오기 전부터 외지인들이 토지의 80%를 소유한 상태”라며 “가덕도 신공항 무산으로 다소 심리적 타격이 있긴 하겠지만 매물이 급격하게 나오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성북동 K공인 관계자도 “물건(토지)을 던지고 싶어도 토지거래허가구역인 만큼 팔기가 만만치 않다”며 “일단 신공항이 아니어도 호재가 많은 지역이고, 가지고 있으면서 추후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반면 부동산 투기 열풍이 지역 분위기를 해쳤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인중개사는 “가덕도에 빈집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며 “토지주들이 신공항 입지로 선정된 후 토지 보상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집만 지어놓고 버려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이 ‘신공항 유치다, 가덕도 개발이다’하면서 사람들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해 마을만 황폐해졌다”고 혀를 찼다.

전국개발정보 지존의 신태수 대표는 “국책사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하려고 보상가를 높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어 땅 투기가 심해진다”며 “이런 상황에서 사업계획이 갑자기 무산되면 부동산시장이 받는 타격도 큰 만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