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② 추억을 판다…성우이용원 & 보성문구사
by김미경 기자
2015.12.24 06:08:00
- 88년 세월 박제한 '성우이용원'
손님 고작 하루 10명 남짓
가위와 빗 56년 전통이발법 고수
이건희 회장도 우리가게 손님
이발요금 1만원에 팁은 10만원
- 47년 역사 혜화동 보성문구사
서울서 가장 오래된 문구점
"이제 그만할 때 됐다" 급매 내놔
| 3대째 현역이발사로 서울 공덕동 만리재 시장골목을 지키고 있는 이남열 성우이용원 사장(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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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경영철학? ‘쇼는 하지 말자’다. 기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름길은 없다. 하나도 허투루 한 게 없다. 그래야 손님이 믿고 온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 ‘성우이용원’을 운영 중인 이남열(67) 씨가 88년 된 가게를 지켜온 비결이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서울 마포구 공덕동 만리재 시장골목에 문을 연 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가위와 바리캉, 칼 등을 써서 짧은 머리를 다듬는 전통식 이발소다. 오랜 기간 수많은 가게가 생겨났다가 사라졌지만 성우이용원 만큼은 옛 모습 그대로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내고 있다.
| 전통방식을 고수해 이발하고 있는 이남열 사장(사진=김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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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은 마치 1960∼1970년대를 박제해 놓은 듯했다. 비스듬히 내걸린 낡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각사각’ 경쾌한 가위질 소리가 들렸다. 손님 머리와 목 사이를 오가는 이씨의 빠른 손놀림은 노련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5평 남짓. 내부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소품이 가득했다. 손님 의자 맞은 편의 연탄난로, 오래된 타일이 박힌 세면대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벽면 대형거울 밑에는 50년 된 일제 브라운표 가위부터 130년 된 독일제 쌍둥이표 면도칼, 88년 동안 5번 정도 교체한 바론 이발의자 3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씨는 온통 낡은 이것들이 요즘 빛을 발한다고 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분무기 대신 수건에 물을 적셔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하고 감자 전분가루를 머리에 묻혀가며 머리모양을 잡는다. 머리를 헹굴 때는 식초 푼 물을 쓴다. 면도거품도 비누로 직접 낸다.”
한번 머리를 깎는데 4~5종류의 가위를 쓴다. 막가위, 숱가위, 머리모양 잡는 가위, 중벌가위, 마무리 가위인데 이발의 꽃은 가위와 빗으로만 머리를 깎는 기술이란다. 이씨는 “이발소를 찾는 연령대는 다양하다. 주로 미용실 머리를 싫어하는 손님이 온다. 기업체 사장부터 총장, 기자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라고 말했다. 하루 평균 10여명. 실제로 기자가 방문한 이날 약 두 시간 동안 3명의 중노년층 신사가 머리를 깎았다. 그중 한 손님은 “신문을 보고 찾아온 뒤 2년 차 단골이 됐다. 오리지널로 잘라주니 좋다. 한달에 한번씩 1년에 12번 찾는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에 끌리는 것도 같다”고 말했다.
| 아날로그 향수가 물씬 풍기는 타일 세면대(사진=김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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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회장도 찾아…두산그룹 출강제안도
이씨의 이발경력은 56년. 1964년 중학교 2학년 때 입문했다. 이발사 면허증을 따는 데까지 7년여가 걸렸다. “드라이부터 배웠다. 3년간 하고 나서 숫돌에 연장 갈고 가위를 잡았다. 조금만 잘못해도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나곤 했다.”
한우물만 파니 손님도 꾸준히 늘었다. 2011년 초엔 이건희 삼성회장이 찾아왔다. 최근엔 두산그룹에서 운영 중인 대학에 출강 제의를 받기도 했다. “원래 대기업 회장 손님이 많다. 그렇다고 특별대우를 해주지는 않는다. 그들이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이라면 나는 대한민국 최고 이발사란 자신감이 있다.”
전통방식을 고수한 덕분에 성우이용원은 지난해 6월 서울시가 선정한 ‘근현대 시민의 특별한 기억을 담은 미래유산’에 뽑히기도 했다. 90여년을 꿋꿋이 버텨 온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이씨는 “경력 37년 만에 나만의 이발을 완성했다. 그제서야 이발이 뭔지 알겠더라. 아들이 배운다고 하면 기술을 전수할 용의가 있지만 할지는 모르겠다”고 웃었다.
이발요금은 1만원인데, 5만∼10만원씩 팁을 주고 가는 손님이 더 많단다. “이발사는 배고픈 직업이다. 밥을 제때 먹으려면 때려치우는 게 낫다. 하지정맥이란 직업병도 생겼다. 그래도 이만큼 하니까 그 세월을 먼저 알아봐 주는 때가 오더라. 이 재미에 이발한다. 하하.”
| 혜화동 혜화초등학교 앞 보성문구사(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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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반세기를 버텨온 가게는 또 있다. 종로구 혜화동 혜화초교 건너편에 자리한 보성문구사다. 이곳 역시 서울서 가장 오래된 문구점이다. 1968년 경신고 앞에서 시작해 옛 보성고(현 종로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를 거쳐 이곳에서 47년간 문구점을 이어오고 있다.
가게를 찾은 날 문앞에는 성탄절 트리를 꾸밀 재료가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학생들이 좋아할 카드는 기둥에 줄줄이 매달려 있다. ‘쫀드기, 뽑기’ 등 추억의 불량식품도 즐비했다. 빽빽하게 학생들의 필수품과 기호품으로 채워져 있는 문구점 출입문. 그 틈에 자세히 보니 ‘임대문의’란 빛 바랜 문구가 붙어 있다.
77세의 주인 할아버지는 2013년 급매로 가게를 내놨다고 했다. “할 만큼 했다. 이젠 쉴 때가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려는 사람이 나서질 않는단다. “근처에 학교가 많아 장사는 어렵지는 않다. 그래도 아침 일찍 나서는 게 부쩍 힘에 부친다. 바람이 있다면 다른 업종보다 문구사를 이어갈 주인이 어서 나타났으면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