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가다] '고도를 계속 기다리는' 임영웅과 13人

by김미경 기자
2015.03.09 06:41:00

소극장 산울림 30주년 기념 공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연습실 가보니…
79세에도 꼼꼼한 임영웅 연출 지시에
송영창 등 60대 배우들 일사불란 움직여
역대 거쳐간 배우 13인 총출동해
12일부터 5월17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서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가운데)가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소극장 산울림 4층 연습실에서 배우 송영창(왼쪽부터), 정나진, 이영석, 박상종과 함께 소극장 산울림 30주년 기념공연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연습 중 작품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공연횟수 2000여회, 관객 수로 치면 50만여명이 다녀갔다. 국내 무대에 선보인 지 45년, 총 40명의 배우가 출연했고, 받은 상만 15개다. 원로연출가인 임영웅(79) 극단 산울림 대표가 소극장 산울림 30주년 기념 공연으로 그의 대표작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린다. 한국 초연 45주년이자 임 연출의 연극인생 60년을 동시에 기념하는 자리다.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선 그동안 ‘고도를 기다리며’를 거쳐간 13명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한국판 고도’의 45년 역사를 갈무리한다. 정동환, 정재진, 이호성, 박용수, 송영창, 안석환, 이영석, 한명구, 박상종, 김명국, 정나진, 박윤석, 김형복 등 이른바 ‘임영웅 사단’이다. 다만 초연배우였던 함현진, 김무생은 이미 타계해 무대에 서지 못한다.

오지 않는 고도를 영원히 기다리는 프랑스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세계 초연한 명작이다. 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우연하게도 바로 그해 임 연출이 처음 국내에 소개해 한국연극사에 한 획을 그었다.

◇원로연출·명배우들의 뜨거운 열기

“거기서 금방 울지 말고, 대사 끝내고 조금 더 사이를 뒀다가 울기 시작하라고. 기다렸다는 듯이 울지 말고”(임영웅 연출). “아, 네. 알겠습니다”(럭키 역 배우 정나진).



1973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사진=극단 산울림).
지난 3일 오후 소극장 산울림 4층 ‘고도를 기다리며’ 연습 현장. 임 연출이 배우들의 움직임과 대사 톤을 차근차근 살피자 송영창, 이영석, 방성종, 정나진 등 연극계를 주름잡는 대배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정나진은 곧바로 임 연출의 지시대로 대사 사이에 간격을 두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상종(에스트라공 역)과 이영석(포조 역)이 재빨리 대사를 받아친다. “운~다” “불쌍히 여기는 모양이니 위로해주시지. 자 어서 눈물을 닦아줘요.”

20년 만에 블라디미르 역을 맡은 송영창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며 “정말 난해한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송영창은 “20대 처음 할 때는 그냥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예순이 됐으니 이젠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동환 선배조차 여전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어 “대사가 전혀 연관성 없고 분량도 많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돼 배우에게는 매우 힘든 작품”이라며 “하지만 늘 고도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같이 해보자는 제안에 모두들 바로 오케이한 이유”라고 귀띔했다.

배우들이 느끼는 임 연출과의 호흡은 어떨까. 송영창은 “시선 하나, 동선 하나, 감정 하나를 정확하게 계산해 지시하기 때문에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된다”며 “배우들은 연출가의 ‘고도’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전히 완벽주의 연출가지만 예전보다 느슨해지긴 했다”며 “술 좀 드시면 더 재미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임영웅 연출이 지난 3일 서울 서교동 소극장 산울림 1층 찻집에서 60년 연기생활의 소회를 말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임영웅의 꿈 “셰익스피어 제대로 올리는 것”

임 연출은 1955년 ‘사육신’으로 데뷔한 이래 ‘고도를 기다리며’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챙!’ ‘가을소나타’ 등 60년간 작품활동을 해온 연극계 거장이다. 특히 ‘임영웅=고도’란 등식이 나올 만큼 그의 대표작은 단연 ‘고도를 기다리며’다. “내 생애 절반 이상을 고도와 함께했다. 용케 여기까지 왔다”며 소회를 밝힌 임 연출은 “복잡한 현대인의 모습을 잘 그린 작품이다. 매번 할 때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한다”고 의미를 뒀다.

연극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고도’와 함께할 거라는 임 연출에게도 꿈은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대로 해보는 것. “한 번도 셰익스피어를 안 했다. 핑계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엉성하게 셰익스피어를 하고 싶지 않았다”며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감춰둔 마음을 전했다. “지난해 초 많이 아팠다. 2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다들 임영웅이 떠나는구나 했단다. 나이 탓에 올릴 수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하.”
지난 3일 찾은 소극장 산울림 30주년 기념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연습현장. 벽면의 노란 테이프가 연극의 전체 배경이 되는 나무 한 그루를, 바닥에 붙인 검정색 테이프는 무대라는 표시를 해주고 있다. 임영웅(오른쪽) 연출이 연습 중에 배우 이영석(왼쪽부터)과 송영창, 박상종, 정나진에게 연기지시를 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