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외면한 물가채, 무슨 일이…
by김남현 기자
2012.10.22 08:25:11
10월 인수물량, 기관 겨우 7.7%..개인 3개월 연속 100%대
기관, 발행·시장금리 스프레드 붙어 메리트 감소..레벨부담도
개인투자 인기, 기관 마케팅+세제혜택 축소 영향..착시효과도
순수개인투자자에겐 여전히 매력적, 초과수익+절세효과
[이데일리 김남현 기자] 은행과 증권사 등 기관들이 물가연동국고채를 외면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최근 기관은 물론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물가채가 인기몰이 중이었다는 점에 비춰 이례적 현상이다.
과연 물가채에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러다 개인투자자들만 독박을 쓰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인투자자 분류에 단위농협 등 법인들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최근 개인들의 물가채 인기에 착시현상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물가채는 여전히 순수 개인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이라는 진단이다. 가격적인 측면에서 투자가치가 여전한데다 세제개편 전이라 원금상승분에 대한 비과세 혜택과 이자소득 분리과세가 가능하다는 점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22일 기획재정부와 채권시장에 따르면 지난주 18일 끝난 10월 물가채 인수에서 기관인수 물량이 겨우 290억원에 그쳤다. 최대 인수가능 물량이 3750억원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겨우 7.7%에 그친 수준이다. 기관들은 지난달에도 최대 인수물량대비 97.8%를 가져갔었다.
반면 개인들은 최대 인수물량 750억원에 육박하는 749억9960만원을 쓸어 담았다. 직접입찰이 가능해진 지난 4월이후 인수비율이 증가세를 보인데다 최근 3개월 동안은 최대 인수물량 대비 100%에 가까운 물량을 가져가고 있는 중이다.
◇ 기관 인수 부진, 입찰·시장 금리간 차이 없는 탓
우선 이같은 현상은 기관과 개인 투자자의 성향이 달라 발생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즉 기관들은 시장상황에 따라 굳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데다 매매를 통한 이익에 치중하고 있어 단기 금리변동에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달 물가채 발행금리는 0.57%. 발행기간 마지막날인 18일 유통시장에서 물가채 금리도 0.57%에 거래됐었다. 즉 기관들은 장내국채시장에서 물가채를 매수하나 입찰을 받으나 별반 차이가 없어 굳이 물가채를 인수할 메리트가 없었다.
A 증권사 채권운용부 팀장은 “이달 기준금리 인하 이후 시장금리가 오르는 상황”이라며 “물가채도 입찰금리와 시장금리간 금리차가 없어 굳이 입찰을 받을만한 메리트가 없었다”고 전했다.
물가채 금리가 최근 과도하게 내렸다는 인식도 기관 인수물량이 적은 원인으로 꼽혔다. 물가채는 지난 7월2일 1.09%에서 10월4일 0.50%까지 최근 석달 사이 무려 59bp(1bp=0.01%포인트)나 하락한바 있다.
◇ 개인투자 인기몰이, 기관 세일즈+세제혜택 축소+착시효과
반면 개인투자자가 늘고 있는 것은 증권사 등 기관들이 물가채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기관들은 최근 국고채 30년물에 대한 개인들의 수요를 확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같은 열풍을 물가채까지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가채가 급락했던 지난 석달동안 명목국고채와 물가채간 금리차인 BER(Break-Even inflation Rate or Inflation)은 252bp에서 245bp로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BER 하락은 명목채권 가격이 물가채보다 더 비싸졌다는 것을 의미함에 따라 물가채가 상대적으로 싸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됐다. 물가채가 명목채보다 듀레이션(원금회수기간)이 길다는 점에서 똑같은 1bp 하락에 물가채가 벌어들이는 수익도 크다.
B와 C 증권사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국고30년물이 개인투자자들에게 인기를 얻자 기관들 사이에서도 개인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젠 국고30년물에서 물가채로까지 옮아간 형국”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 8월 세법개정안을 통해 빠르면 내년부터 세제해택이 축소될 예정이라는 점도 개인투자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물가채의 경우 명목국채와 달리 원금상승분이 과세대상 이자소득에서 제외된다. 또 10년 이상 장기채권은 올해까지 보유기관과 관계없이 그 이자와 할인액에 대해 30% 분리과세가 가능하다. 고액자산가의 경우 물가채를 금융종합과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재정부는 지난 8월 세법개정안을 통해 물가채 원금상승분에 대해 2015년 1월1일 이후 발행되는 분부터 과세대상 이자소득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10년 이상 장기채권 분리과세도 내년부터는 3년 이상 보유라는 조건을 달았다.
물가채에 대한 개인 인기몰이의 또 다른 이유는 단위 농협 및 신협, 금고 등 기관이 개인투자자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물가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인기를 순수 개인투자자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들 기관들은 만기보유보다 단기매매를 통한 차익실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최근 물가채 금리가 급락해 상당한 차익을 거뒀겠지만 지금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너무 낮은 물가채 금리로 추가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앞선 B 증권사 관계자와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팀장은 “개인투자자 중 단위농협 등 기관들도 상당해 지금의 인기는 착시효과가 있다. 물가채 금리가 이미 투기적 수준까지 내려온 측면이 있어 이들 기관이 물가채로 추가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더불어 이들 기관의 물가채 인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개인, 금리수준+절세효과 등 투자 메리트 여전
다만 순수 개인투자자들에게는 물가채가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분석이다. 지난주 물가채 인수당시 기준으로 비교하면 물가채 0.57% 금리에 9월 전년동월비 소비자물가상승률 2%를 대입할 경우 기대수익률은 겨우 2.57%다. 하지만 BER을 감안하면 향후 10년동안 물가상승 기대가 2.41%라야 동일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즉 BER 260bp 안쪽에서는 물가채에 대한 메리트가 있는 셈이다. 또 세제혜택이 여전한데다 BER을 감안해도 물가지수가 1%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여전히 추가 수익이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D 증권사 채권 리테일부문 파트장은 “물가채는 세제혜택은 물론 금리가 최근 하락 추세에 있어 한달만 보유해도 시중금리의 두배 가량 수익을 낼 수 있다”며 “물가가 1%대로만 내려가지 않으면 손해 볼 일이 없어 개인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세제혜택이 축소되더라도 그 이전 발행된 물가채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메리트가 있다. 즉 세제혜택 축소 이후에도 유통시장에서 축소전 물가채에 대한 수요가 여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B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 국민주택1종 5년물 채권이 분리과세 혜택으로 개인투자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당시 잔존 1~2년 남짓할 때까지도 은행신탁 등 특정계정을 통해 많이 팔렸던 바 있다”며 “과세 적용이 소급되지 않아 지금 발행된 물가채 인기는 여전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