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뇌’ 빚어낸 ‘한국적 리얼리즘’

by경향닷컴 기자
2009.12.31 12:00:00

덕수궁미술관 권진규 조각전


 
[경향닷컴 제공] 권진규(1922~1973)는 한국적 리얼리즘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작가였다. 유학했던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의 스승인 시미즈 다카시(1897~1981), 또 다카시의 스승인 프랑스 조각가 에밀 부르델(1861~1929)의 근대 조각 영향을 받았으나, 한국화를 거쳐 독창적 자기 세계를 이뤄낸 작가다.

한국적 리얼리즘을 추구한 권진규는 인물을 다루면서 불안한 영혼, 고뇌와 절망의 감정을 드러냈다. 종교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 초월과 영원을 향한 염원을 반영했다. 사진 왼쪽부터 ‘불상’(나무에 채색)<1971>, ‘얼굴’(나무)<1971>, ‘춘엽니 비구니’(테라코타)<1967>.



권진규의 한국적 리얼리즘은 인물상에서 두드러지는데, 치열한 자아가 거침없이 나타난다. ‘자소상’과 ‘얼굴’ 같은 인물 두상은 단순하지만 거친 질감으로 인간의 고뇌, 절망을 뿜어낸다. 1973년 5월 고려대 박물관에 들러 자신의 작품을 둘러본 뒤 작업실로 돌아와 ‘인생은 공(空), 파멸’이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다.

권진규의 작품은 끝내 죽음에 이르렀던 고뇌·절망과 구도의 길 사이를 오간다. ‘춘엽니 비구니’를 보면, 불안하고 격렬한 감정은 종교인을 다루면서 차분하고 안정감 있는 표정으로 바뀐다. 전국의 사찰을 돌며 기존 불상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불상’에 나타난 열반·해탈의 경지가 권진규의 내면이 궁극적으로 나아가려 했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