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붉은 입술…그 자유로운 아름다움

by이윤정 기자
2024.04.09 05:30:00

마릴린 민터 국내 첫 개인전
女 아름다운 신체, 노골적 드러내기
"아름다움 추구는 인간의 본능"
4월 27일까지 리만머핀 서울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새빨간 여성의 입술이 관능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다른 그림에서는 주름진 입술 사이로 보석 박힌 치아가 번쩍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 20대 여성의 주근깨를 도드라지게 그린 그림에서도 붉은 입술이 강조됐다. 올해로 76세가 된 미국의 예술가 마릴린 민터가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민터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감추기 보다 ‘입술’이라는 상징적인 신체를 활용해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마릴린 민터의 국내 첫 개인전이 오는 27일까지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성의 입과 입술을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묘사한 그의 신작 회화 6점을 선보인다.

최근 전시를 위해 내한한 마릴린 민터는 “여성의 입술은 에로틱하면서도 ‘숨’을 쉰다는 점에서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다”며 “아름다운 입술은 여성이 지닌 미(美)의 힘을 자랑하는 소재”라고 말했다.

마릴린 민터의 ‘키르케(circe)’(사진=리만머핀 서울).
민터는 수십 년간 사진, 회화, 영상, 설치를 넘나들며 극사실 주의와 추상 화법을 동시에 구사하는 방식으로 고유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의 작업은 대중 매체 속 여성의 이미지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체모, 튼살, 더러운 발 같은 신체 요소나 몸단장 행위에 주목해왔다. 작가는 현실을 은폐하고 정제하기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를 택했다.

이번 전시작도 이같은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여성의 얼굴, 입, 입술, 치아, 그리고 화려하게 치장된 목라인을 클로즈업으로 묘사했다. 특히 프랑스의 디자이너이자 퍼포머로 유명한 미셸 라미(80)를 주인공으로 한 ‘미셸 라미’ ‘스위트 투스’ 등의 작품이 눈에 띈다. 라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선 얼굴의 주름과 금박을 씌운 치아 등이 그대로 노출되는데 이에 대해 민터는 “성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이 든 얼굴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금은 흐트러진 아름다움을 통해 ‘뭔가 이상한데’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완벽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마릴린 민터의 ‘Gilded Age’(사진=리만머핀 서울).
그의 작품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사진과 회화를 모두 전공한 민터는 인물 사진을 인쇄한 뒤, 알루미늄 패널에 반투명한 에나멜페인트를 수천 번 덧바르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 물에 젖은 듯이 촉촉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그는 여성이 스스로 섹슈얼리티와 성적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작가다. 여성의 성적 아름다움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스타일로 인해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미국 페미니즘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이나 성적 이미지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누구나 아름답게 보이면 기뻐하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미국 예술가 마릴린 민터(사진=리만머핀 서울).


마릴린 민터의 ‘빛나는(Lucent)’(사진=리만머핀 서울).
마릴린 민터의 개인전 전경(사진=리만머핀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