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카드론 규제의 역설
by서대웅 기자
2023.03.14 06:15:00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최근 국내 카드사의 리볼빙(일부 결제금액 이월약정)서비스 잔고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7개 전업계 카드사의 리볼빙 이월잔액은 7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9.4%나 증가했다. 리볼빙 서비스는 당월 결제할 카드액의 일부를 다음달로 이월해 결제하지만, 연체가 없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 이점이 있다. 하지만 연 20%에 육박하는 높은 수수료가 이용자의 부담이 되기도 한다.
카드사가 제공하는 단기대출인 현금서비스 이용도 최근 증가세이다. 장기대출인 카드론에 비해 현금서비스의 평균금리는 약 3%포인트 가량 높다. 지난해 현금서비스 이용액은 약 57조원으로 전년대비 3% 가량 증가했다. 카드론이 같은 기간 약 11%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신용위험이 높은 차주가 대상인 리볼빙과 현금서비스는 특성상 높은 위험프리미엄이 책정돼 높은 금리로 운용된다.
최근 카드사 장기대출이 줄고 단기대출이 늘고 있다는 점은 채무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금리가 높고 상환 기간이 짧은 단기성 대출의 증가가 불가피하게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카드사의 30일 이상 평균 연체율은 1.01%로 전년 대비 23% 넘게 증가했다.
리볼빙과 현금서비스 이용이 증가한 주요 배경은 높은 물가수준에 기인한다. 올해 들어서도 여전히 5% 넘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가계 지출 여력을 제한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카드론 규제도 단기성 대출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카드론에 대한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지난해 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DSR은 차주의 모든 가계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카드론 원리금이 DSR 산정 때 반영된다.
현재 가계대출 1억원 이상의 차주를 대상으로 DSR 40%가 적용된다. 따라서 DSR 40%가 넘는 차주의 경우 추가적인 카드론 이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카드론 이용이 제한된 차주는 급전 대출로 현금서비스 또는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리볼빙과 현금서비스는 차주별 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카드론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지난해 발표한 학술연구논문에 따르면 리볼빙 서비스 이용은 카드론 규제 강도와 유의한 정(+)의 연관성을 보였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강화 방안’이 발표된 2021년 10월 이후부터 카드론 이용이 줄어들자 리볼빙 서비스 증가세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향후 리볼빙 서비스 이용이 늘어날수록 연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리볼빙 서비스의 최저상환 규모와 신용한도까지 사용된 카드 숫자가 증가할수록 차주의 부채상환 부담은 더욱 커진다. 카드론 이용자의 상당수가 한도소진으로 인해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상정하면, 금리 상승 및 높은 물가로 인한 가계의 가처분 소득 감소 상황에서 리볼빙 서비스 이월한도 증가 가능성은 높다.
특히 연체횟수가 증가할수록 채무불이행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이미 학계에서 보고된 연구 결과다. 더욱이 리볼빙과 현금서비스 이용자의 경우 신용도가 높지 않다는 점에서 향후 금융비용 상승에 따른 가처분 소득 감소시 기존 대출의 부실 가능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속 증가세를 보이는 리볼빙과 현금서비스는 금융시장의 안전성을 저해하는 주요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여전히 높은 물가 상승세, 고금리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가 지속 중이라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장기에 걸쳐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카드론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카드론은 저신용차주 입장에서 리볼빙과 현금서비스에 대한 일종의 대환대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금융당국은 차주별 DSR 40% 규제에 적용되는 카드론 규제를 한시적으로 유예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