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미국in]코로나 백신이 글로별 경제도 치유할까?

by이준기 기자
2020.09.08 00:00:00

백신, 美대선 화두로 부상…이르면 내달 중 출시 가능
관건은 광범위한 접종 여부…WHO "내년 중반께 돼야"
서방국가들, 백신 회의론자 만연…"간단한 문제 아냐"

사진=AFP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코로나19 백신 출시가 내년 글로벌 경제 전망을 바꿀 거라고 보는 건 순진한 관측일 수 있다.”

최근 영국 경제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닐 시어링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내놓은 진단이다. 이른바 ‘백신 출시=경제 만병통치약’ 프레임이 ‘과도한 가정’이라는 의미다. 백신이 출시되더라도, 효능과 생산 및 분배 속도 등을 고려할 때 당장 글로벌 경제를 ‘V자’ 형으로 되돌리 긴 어렵다는 게 시어링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이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개발 여부는 11월 열리는 미국 대선의 최대 화두다. 백신이 ‘경제 회복의 시작

’이라는 프레임 때문이다. 이 프레임을 밀어붙인 건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미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4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연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전망하면서 “11월1일 이전에, 10월에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여기에는 백신 접종이 이뤄지면 ‘코로나에 대한 미국의 승리’로 몰아갈 수 있고, 이는 곧 지지층 결집은 물론, 지지율 상승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속내가 베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든 대선 전 백신 승인이 나오도록 보건당국과 제약사들을 압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 보건당국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달 27일 각 주(州) 정부들에 오는 10월 말 또는 11월 초 백신이 나올 수 있으니 배포할 준비를 하라고 통보한 바 있다.

각국 간 백신 ‘경쟁’은 치열하게 전개 중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미국 모더나,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학, 미국 화이자·독일 바이오테크 등 전 세계 9곳이 3상 임상 시험에 돌입한 가운데 미국·영국이 가장 앞서 가는 형국이다. 뒤를 이어 중국 칸시노 바이오, 중국 시노백 바이오테크, 중국 우한생명과학연구소, 중국 시노팜, 러시아 가말레야 연구소 등 중국·러시아가 추격 중이다.





전문가들 역시 대선 전 백신이 준비될 가능성은 작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백신 출시가 본격화하더라도 경제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과거 백신들과 달리 이번 코로나19 백신은 효능 면에서 다소 뒤처질 수 있다. CNN방송에 따르면 미 식품의약국(FDA)은 현재 개발 중인 백신의 효능이 플라시보(가짜약)에 비해 50% 이상 높다면 출시를 허가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존 승인 기준(70%)보다 문턱을 낮춘 것으로, 빠른 백신 개발을 위한 조처다. 이와 관련, CNN은 “접종을 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코로나19 위협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라며 “접종이 이뤄지더라도, 사람들이 직장을 나가고, 소비하는 데 주춤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미국 야당인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사진=AFP
백신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올해 내 10억 명 분량, 내년에는 70억 명의 분량의 백신이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이 수치는 복수의 백신이 승인됐을 때를 가정한 수치여서 공급량은 현저하게 낮을 수도 있다. 아울러 코로나19 백신에 맞는 바늘과 주사기, 백신을 담을 유리병 등도 부족할 수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광범위한 접종이 이뤄지려면 내년 중반은 넘어야 한다”(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고 전망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우려는 미국과 유럽 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백신 회의론’이다. 도이체방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약 60%만이 향후 6개월 내 백신 승이 이뤄지면 접종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에서도 접종 의향이 있는 국민은 70~75% 수준에 불과하다. 집단 면역이 80%는 돼야 가능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유럽 인구의 절반만이 “백신은 안전하다”는데 동의한 점은 이러한 전망을 부추기고 있다.

시어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백신이 경제가 최종적으로 정상화하는 과정에 핵심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궁극적으로 경제 정상화의 과정은 바이러스를 없애는데 달렸다”며 “백신의 효능, 생산 및 분배 속도 등을 고려할 때 글로벌 경제 회복은 백신의 존재에 의해 해결될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