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위기, 투자자 발동동]주식·채권 투자자 '뺄까, 말까'
by최정희 기자
2018.09.12 06:00:00
작년 해외비과세 펀드에 막차탔는데..비과세는 커녕 마이너스 수익률
24.7조 신흥국 투자액 중 절반 이상 환노출 위험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작년 말 해외 비과세 펀드에 막차를 탄 투자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투자자 A씨는 비과세 혜택 마지막날, 삼성아세안증권펀드에 100만원 가량을 집어넣었는데 현재 수익률이 마이너스 12%다. 중국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에 적립식으로 넣은 투자자도 수익률이 마이너스 7%를 기록하고 있다. 베트남 펀드에 300만원을 투자한 B씨는 한 때 30%의 수익률을 냈으나 원금을 간신히 유지하는 선에서 버티고 있다. 2016년말과 2017년 중반에 브라질 국채에 가입한 투자자 C, D씨는 마이너스 30% 안팎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투자자 D씨는 “브라질 국채도 마이너스이고 중국 펀드도 마이너스 18%에 달한다”며 “마이너스 행진에 입맛도 없다”고 말했다.
연초 아르헨티나에 이어 지난달 터키,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 세계 신흥국들이 곳곳에서 잡음을 일으키며 금융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위기설’까지 대두되면서 투자자들은 신흥국 자산 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그냥 두자니 더 떨어질까 걱정이고 손실을 감수하고 팔자니 원금 까먹는 게 두렵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신흥국 주식형(주식혼합 포함) 공모펀드 수익률은 6개월 평균 마이너스 14.4%를 기록하고 있다. 일반 해외주식형(혼합 포함) 펀드 수익률이 -7.2%란 점을 고려하면 수익률 하락폭이 두 배 더 큰 셈이다. 채권형(채권혼합 포함) 펀드도 -4.7%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브라질주식형 펀드가 -25%를 기록하고 있고 남미신흥국펀드와 중국주식펀드가 각각 -20%대 수익률도 저조하다. 다만 이는 통화가치 하락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공모펀드 중 29%인 4조8300억원은 환헷지가 되지 않아 통화가치 하락까지 고려할 경우 수익률 하락폭은 더 커질 전망이다. 여기에 증권사가 중개한 신흥국 채권투자액 8조2000억원의 대부분도 장기 투자라 환헷지를 하지 않았다. 즉 신흥국 투자액 24조7000억원 중 절반 이상인 13조원 넘는 금액이 환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오태동 NH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신흥국은 외환시장에서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며 “신흥국 경기 자체는 전반적으로 악화되지 않았으나 달러화 강세로 달러 유동성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인도는 2분기 경제성장률이 8.2%로 2년만에 8%대로 복귀했고 터키 역시 7%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나라들은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적자인 ‘쌍둥이 적자’로 달러 유출이 많은단 특징이 있다. 이로 인해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주가가 하락하고 동시에 채권값도 함께 급락(채권 금리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연초 이후 7일 현재 달러화 대비 99% 급락했고 터키 리라화도 70% 가량 약세를 보이고 있다. 브라질 헤알화,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는 22%대, 러시아 루블화는 20%, 인도 루피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각각 12%, 10% 약세 흐름이다. 중국 위안화도 5% 하락 거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연초 이후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8%, 터키 ISE100지수는 19% 하락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종합지수도 8% 가량 떨어졌다. 터키 3년물 금리는 최근 27%로 1년만에 두 배 이상 높아졌다가 26%로 내려앉기도 했다. 브라질과 인도 10년물 국채 금리는 각각 12%대, 8%대로 2%포인트 안팎으로 올랐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한국투자증권은 올 들어선 인도채권 15억원 가량을 매도 중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 세계적으로 신흥국에서 돈이 빠지고 있다.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에 따르면 지난달 9일부터 이달 5일까지 신흥국 주식형·채권형 펀드(상장지수펀드 포함)에서 26억5900만달러 가량이 유출됐다. 원화로 따지면 3조7000억원 규모다. 브릭스(BRICs)등 신흥국 주식쪽에서만 15억달러(1조7000억원)가 빠져나갔다. 선진국쪽으로 51억8400만달러(5조8500억원)가 유입된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국내 신흥국 공모펀드 시장에서도 올 들어 4월까지 2700억원이 들어오다 5월부터 순유출로 전환돼 이달 7일까지 2200억원 가량이 빠졌다.
증권가에서도 저가 매수 등을 권하지 않고 있다. 오태동 팀장은 “내년 1분기까지는 유럽중앙은행(ECB) 양적완화 종료 등에 따른 유로화 강세 등에 달러화 강세가 진정되면서 신흥국 시장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지만 그 뒤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몇 년 뒤를 고려해 신흥국에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재연 미래에셋대우 갤러디아WM상무는 “브라질 국채는 고위험·고수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할해 투자해볼만 하지만 바닥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옛날엔 10억원씩 들어갔던 사람들도 1억원씩으로 분할해 넣고 있지만 최근엔 이런 거래마저 조금씩 줄어드는 단계”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