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e사람]"왜 한국 백화점 1층에는 '명품'만 있죠?"

by박성의 기자
2017.12.12 06:00:00

이혜연 현대百 리빙콘텐츠팀 바이어 인터뷰
소득 3만불 시대… "백화점 핵심, 패션 아닌 리빙"
현대百 ''고급화 전략''으로 승부수
"피로사회 도래… ''힐링'' 위해 리빙에 지갑 열 것"

[이데일리 박성의 기자]‘1층에는 명품&뷰티.’ 국내 백화점업계의 불문율이다. 명품으로 백화점 ‘큰 손’인 귀빈(VIP)을 끌어모으고, 화장품으로 ‘주 고객’인 여성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혜연 현대백화점 리빙콘텐츠팀 파트장(바이어)은 이 공식에 균열이 생길 날이 머지않았다고 진단한다. 그가 전망하는 미래의 백화점 1층에는 ‘리빙(Living)’이 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리빙 사업을 주도하던 가전용품팀을 리빙사업부로 승격시키고 리빙콘텐츠팀을 신설했다. 기존 백화점 리빙관을 리뉴얼해 프리미엄급 리빙관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아우르는 리빙이 현대백화점의 핵심 사업으로 올라선 모양새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본사에서 만난 이혜연 파트장은 이 같은 변화를 10년 전 입사 당시부터 예견했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 쁘렝땅백화점 등 세계 유명 백화점 1층에는 리빙브랜드가 들어선 지 오래됐다. 그 모습이 지금 한국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경우 특정 시점부터 리빙관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졌는데, 그 기준점이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라고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GNI는 약 2만7500달러다.

이 파트장은 “패션은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에 비하면 인테리어소품과 가구 등은 아직도 미개척 지대”라며 “경제가 발전하면 사람들의 관심사가 점차 넓어진다. 앞으로는 의식(衣食)에 이어 주(住), 즉 생활과 관련한 브랜드가 부상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대백화점 리빙 편집매장 ‘HbyH’ (사진=현대백화점)
이 같은 변화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리빙 시장 규모는 12조5000억원으로 2008년(7조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성장했고, 2023년까지 18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매출성장률이 2011년 11.4%를 끝으로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국내 백화점업계가 리빙에 힘을 싣는 이유다.



다만 ‘리빙 키우기’가 현대백화점만의 숙제는 아니다. 경쟁사를 따돌리기 위해 현대백화점은 ‘프리미엄’을 차별화로 내세웠다. 가격이 아닌 높은 질로 승부하겠다는 얘기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생활문화기업인 현대리바트가 지난 2월 고급 주방용품을 파는 윌리엄스 소노마사와 국내 독점 판매 계약을 체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파트장이 담당하고 있는 홈퍼니싱 편집숍 ‘에이치바이에이치(HbyH)’도 트렌디한 감성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중시되는 요즘, 고급화를 외치는 현대백화점의 고집이 행여 독(獨)이 되지는 않을까. 이 파트장은 가격경쟁에만 치중하다가는 ‘충성고객’을 놓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 파트장은 “브랜드 경쟁력은 낮은 가격을 통해서만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중저가 상품 위주로 매장을 구성하는 게 브랜드 성장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소비자가 ‘싼 맛’에 제품을 구매할 수는 있지만, 사용 중 잔고장이라도 발생한다면 재구매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파트장은 “고객의 기대 수준을 떨어뜨려서는 브랜드가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백화점 리빙콘텐츠팀은 요즘 새로운 성장동력 찾기에 한창이다. 2019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남양주점과 현대시티아울렛 동탄점, 2020년 현대백화점 여의도 파크원점이 개장할 예정으로, 여기에 입점 시킬 브랜드와 콘텐츠를 발굴해야 한다. 막중한 임무에 이 파트장의 어깨도 무거워졌지만, 성공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가 바라보는 국내 리빙 시장의 전망이 그만큼 창창해서다.

이 파트장이 주목하는 것은 퍽퍽해진 한국인의 삶이다. 그는 “바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집에서만큼은 푹 쉬고 싶어한다. 결국 집의 작은 소품부터 침대에 이르기까지 ‘힐링의 가치’만 줄 수 있다면 소비자들은 과감히 지갑을 열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