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반도체 동맹’으로 끝난 도시바 인수전…삼성 독주 위협 될까

by김형욱 기자
2017.08.26 06:42:18

도시바, WD와 이달 내 우선협상 본계약 사실상 결정
양사 세계점유율 단순 합산하면 삼성전자 턱밑 위협

AFP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기업을 넘어선 국가 간 반도체 주도권 싸움으로 관심을 끌었던 일본 도시바 반도체부문 인수전이 사실상 ‘미일 (반도체) 동맹’으로 끝나는 모양새다. 이 결과가 현 삼성전자(005930) 독주 체제에 변화를 불어 일으킬지 여부가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자금난 끝에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추진 중이던 도시바는 지난 23일 이달 중 본계약을 맺는다는 목표로 미국 협력사 웨스턴디지털(WD)과 막판 합의중이라고 밝혔다. 24일엔 이사회 승인까지 거쳤으며 1조9000억엔(약 19조원) 전후에서 매각액을 협상 중이라고 전해졌다. 여기에 공동 매각 주체이자 사실상 매각 대상을 결정할 수 있는 일 산업혁신기구, 일본정책투자은행 등 일본 정부측 자본도 사실상 WD의 손을 들었다.

도시바는 지난 6월 SK하이닉스(000660)를 포함한 한미일연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세부안 협상을 진행했으나 WD에 발목이 잡혔다. WD는 도시바와 50대 50 합작법인을 설립해 일본 내 요카이치(四日)시 반도체 공장을 공동 운영하고 있었고 이를 이유로 본인의 동의 없는 매각은 불법이라고 막아섰다. 은행 채권단의 독촉, 시간에 쫓겨 온 도시바는 진퇴양난에 빠졌고 결국 우선협상 주체를 결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다음 관심사는 WD와 도시바 연합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 여부다. 지난해 기준 낸드플래시 부문 세계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5.2%로 압도적인 1위였으나 도시바(19.3%), WD(15.5%)가 바짝 뒤쫓고 있다. 그 뒤를 마이크론 테크놀로지(12.0%), SK하이닉스(10.1%), 인텔(6.9%)이 뒤따르고 있다. 도시바와 WD의 지난해 점유율을 단순 합산하면 34.8%로 삼성전자를 턱밑까지 쫓게 된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은 “양사가 힘을 합친 배경에는 삼성전자의 독주 속에 각 회사가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전했다. 재작년 미국 샌디스크가 도시바와 손잡고 욧카이치 공장을 공동 운영키로 한 것도, WD가 지난해 다시 샌디스크를 인수하며 도시바와 손잡게 된 것도 애초에 삼성전자를 견제한 행보였다는 게 닛케이의 분석이다. 닛케이는 “도시바와 WD가 원점으로 돌아가 부활을 모색한다면 점유율 면에서 삼성에 근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 회사는 이미 공장 공동 운영 과정에서 기술을 공유하고 있는데다 WD는 세계 최대 하드디스크 구동장치(HDD) 제조사로서 낸드플래시 소비의 큰손이라는 점도 양사 협력에 따른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바 반도체는 2015년 회계분식 사건이 터진 이후 지속된 자금 압박으로 대규모 선행 투자가 필수인 낸드 플래시 분야에 대한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는 단점도 있다. WD 역시 도시바 인수에 최소 1조원 이상의 자금을 새로이 투입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번 인수합병(M&A)가 단순히 산술적인 점유율 확대 효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IHS마르키트 조사에 따르면 올 1분기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6.7%, 도시바가 17.2%, WD가 15.5%로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 삼성전자가 도시바의 점유율 감소분을 그대로 가져간 모양새다. SK하이닉스(11.4%), 마이크론(11.1%), 인텔(7.4%) 등 뒤따르는 기업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한편 도시바와 WD는 구체적인 M&A 내용에 대해 막판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WD가 전환사채(CB) 등 의결권이 없는 형태로 1500엔(약 1조5000억원)을 출자키로 했다고 전했다. 나머지는 WD가 손잡은 미 헤지펀드 KKR와 일본 정부 자본과 기업 등이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