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원석 기자
2008.11.14 08:33:20
[이데일리 정원석기자] 시장에서 기대했던 채권안정기금이 실체를 드러냈다. 금융위원회는 13일 회사채 시장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최대 10조원 규모의 채권안정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의 계획은 은행과 보험사, 연기금 등 기존의 채권투자기관들과 함께 펀드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산업은행이 산금채 2조원을 발행에 자금을 보탠다. 정부가 산업은행에 1조원을 증자하며, 민영화 일정을 늦추는 대신 `채권안정펀드`라는 작품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기대처럼 채권안정펀드의 목표는 채권시장 안정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채권투자를 많이 하는 은행, 보험사, 연기금 등 기관들의 팔목을 비틀어서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를 사줄 수 있는 펀드를 만든 것이다.
정부 재정이 투입되거나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지원하는 등의 계획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관리하는 기관이 채권투자 규모를 늘리는 정도 외에는 회사채 시장에 추가로 자금이 유입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금융위 계획대로라면 산업은행이 투입하는 2조원도 은행채 시장을 통해 조달된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회사채안정펀드 10조원을 기존의 채권 투자자금 10조원 감소로 받아들였다. "아랫돌 빼서 윗돌 막는 셈"이라는 것이다. 금융위가 거론한 은행과 보험사 등도 이미 유동성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금융위 등이 은행의 BIS비율을 개선시키기 위해 산은 등을 통해 자본을 확충해주겠다는 언론 보도 내용과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일관성도 없고, 방향성도 없는 정책에 대해 시장은 가격 변동을 통해 의사 표시를 분명히 했다.
금융위는 이전에 했던 방법을 답습하는 듯하다. 은행채 매입 등 시중 유동성과 관련된 사안을 다뤘던 방식이다. 언론을 통해 계획을 흘리고, 이에 대한 시장의 반향이 일으키고, 결국에는 한국은행 등이 그 계획을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한은이 결국은 채안펀드에 참여하던지, 그도 아니면 새로 발행하는 산금채를 매입할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위는 힘 안들이고 정책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채안펀드 조성 발표 뒤 국고채 3,5년 금리는 30bp 급등했다. SK글로벌 사태가 일어난 2003년 3월12일 이후 5년8개월 만에 최대였다. 기준금리 인상보다 파괴력이 강했다. 채권시장 안정책이 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꼴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시장의 반란`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어설픈 계획을 급조해서 한 건 하려고 한다"는 비난도 빗발쳤다. 결과적으로 채권시장에서 정책에 대한 불신은 더 깊어지게 됐다.
(이 기사는 13일 오전 9시13분에 이데일리 유료 서비스인 `마켓 프리미엄`에 출고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