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06.30 08:01:03
발행업체 증발… 가짜 홀로그램… 대출·투자 사기
불법 판치는 8조원 시장… 제도적 구제책은 부족
[조선일보 제공] 회사원 최모(43)씨는 얼마 전 청주에 있는 한정식 식당에서 당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식사를 한 뒤 음식값을 계산하려고 이 식당에서 발행한 상품권을 내밀었는데, 주인이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작년 6월에 이 가게에서 8만원을 주고 산 상품권인데 왜 사용할 수가 없느냐”고 따졌지만, “음식점 상호만 그대로지, 주인은 작년 10월에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되돌아왔다.
이모(60)씨는 지난 2월, 40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으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려고 했다. 그러나 이 상품권을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씨가 1년 전에 구입한 업체에 전화로 항의하자, 그곳 직원들은 “우리는 상품권 인쇄만 맡았을 뿐”이라고 잡아뗐다. 이씨는 발행업체를 직접 찾아갔지만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혔고 직원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난무하는 상품권, 급증하는 피해
상품권 발행과 유통이 난무하면서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발행업체가 증발해버려 휴지조각이 된 상품권, 구입 대상 상품의 유효기간이 지나버려 쓸모가 없어진 상품권, 홀로그램과 발행업체 로고 등을 가짜로 만든 유령 상품권뿐 아니라, 최근에는 상품권을 이용한 대출·투자 사기도 잇따르고 있다. 예컨대 인터넷을 이용해 ‘상품권 매입 후 3~6개월 뒤 다시 상품권을 가져오면 연20~30%의 이자와 원금을 돌려주겠다’는 식으로 투자금을 끌어 모은 뒤 잠적해버린다.
금융감독원 조성목 비제도금융조사팀장은 “이들 업체는 터무니없는 고수익을 약속하고 처음엔 이자를 꼬박꼬박 지급하다 투자금이 어느 정도 쌓이면 갖고 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로 상품권을 사도록 한 뒤, 그 자리에서 낮은 액수의 현금을 주고 상품권을 다시 사들이는 ‘상품권 깡’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상품권 피해자들의 상담건수는 2002년 365건에서 2004년 459건, 2005년 723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6월 말까지 벌써 494건이 접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