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05.14 11:25:11
[조선일보 제공] 부동산 전문가인 봉준호(44) 닥스플랜 대표. 이 사람 만나기 참 힘들다. 부동산 개인 컨설팅 한 번 받으려면 최고 500만원, 강연에 초빙하려면 시간당 300만원의 강연료를 줘야 한다. 한 재테크 강의에선 3시간에 2500만원을 받고 강연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그를 만나려고 줄을 섰다.
지난 3월 중순 인터뷰를 요청하고 나서 한 달 반이 지난 4월 27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봉씨를 만났다. 인기의 비결을 물었다. 봉씨는 “왜 좋은지는 모르겠는데 땅을 보고 집을 구경하는 게 태어날 때부터 좋았다”며 “좋아하는 걸 맘껏 하니 경쟁력이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봉씨는 하루에 10가구씩 1년에 3650가구의 집을 둘러본다. 봉씨는 자신이 본 집 숫자로 계절을 안다. 그는 “3000가구쯤 보면 가을이구나 한다”라며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만나 분위기를 느끼고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아파트 단지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눈에 들어오는 경지가 됐다”고 말했다.
직접 방문한 아파트에 대한 정보는 수첩, 일지에 꼼꼼하게 적어 놓는다. 강남의 한 초고층 아파트는 건물 입주 15일 전에 모든 집에 다 들어가 보고 창 밖 경치까지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 놨다. 이런 정보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선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국의 모든 아파트를 둘러보는 것은 아니다. 강남 등 20여개 핵심 지역만 꾸준하게 돌아다닌다. 그리고 부동산 공인중개사를 사귄다. 봉씨가 가깝게 지내는 공인중개사만 1100여명이다. 봉씨는 “지역 시장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 공인중개사들”이라며 “미리 쌓아둔 친분으로 아파트를 시세보다 2000만원은 싸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바닥부터 정보를 훑는 게 봉씨의 숨은 경쟁력이었다.
봉씨는 1985년 400만원짜리 월세 단칸방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것도 동생 둘과 할머니를 모시고 말이다. 홍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설사에 취직했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1988년 월급을 저축해 모은 1350만원으로 서울 시흥동의 16평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하려다 50만원이 모자라 다음 기회를 노렸다. 대신 1350만원을 종자돈으로 삼아 주식투자에 나섰다. 주가 폭락으로 2개월 만에 손에 쥔 돈은 550만원으로 줄었다. 봉씨가 사려던 아파트는 그 후 수직 상승해 4년 만에 5500만원이 됐다.
내집 마련에 실패한 봉씨는 ‘도대체 아파트가 뭐기에’라는 생각에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전세를 전전하며 전셋값을 올려주다 보니 ‘월급을 절반씩 저축해서 20년을 모아도 33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부동산 관련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봉씨는 1993년 4월 전셋집의 방 하나를 비워 1인 기업인 ‘닥터봉 부동산 연구소’를 차렸다. 집 근처 대학 도서관에 오전 6시 출근, 오후 11시 퇴근하는 생활을 하면서 부동산 관련 법 공부를 시작했다. 사무실에는 부동산 관련 서적, 카탈로그, 자료 등이 쌓여갔다.
봉씨가 돈을 버는 방법으로 세운 원칙은 두 가지였다. 첫째, 어느 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 자신의 쓰임새를 보여준다. 둘째, 남이 신경 쓰지 않는 일, 생각하지 않는 일을 찾아서 한다.
그렇게 찾아낸 분야가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대한 컨설팅이었다. 건설사에서 일한 경험도 살릴 수 있었다. 봉씨는 “당시는 조합이 정보를 많이 가진 시공사(건설사)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분위기였다”며 “조합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나타나자 단번에 상한가를 쳤다”고 말했다. 80여개 조합을 컨설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웬만한 신규 아파트 단지의 장·단점을 훤히 알게 됐다.
봉씨는 차츰 조합 컨설팅뿐 아니라 조합원 컨설팅도 하게 됐고 결국 입소문이 나자 부자들이 개인 컨설팅을 해달라고 줄을 서게 됐다. 컨설팅을 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돈을 벌 기회도 생겼다. 1995년엔 한 조합 아파트의 단지 상가를 통째로 사서 쪼개 파는 프로젝트가 맡겨졌다. 30억원에 매입해서 25개 상권으로 쪼개 파는 데 성공하면 60억원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홍보비 6억원을 계산하면 60%만 분양에 성공해도 본전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종자돈은 3억원밖에 없었다.
봉씨는 당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데이타베이스(DB) 마케팅을 실험하게 된다. 우선 3억원을 계약금으로 해서 3개월 후에 잔금 27억원을 주기로 계약한 후에 컨설팅을 하며 알게 된 사람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봉씨는 수첩에 적힌 DB를 이용해 별다른 홍보비를 쓰지 않고도 한 달 반 만에 100% 분양에 성공했다.
봉씨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집이 투자 대상으로 바뀌는 흐름에 주목하고 어떤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지 연구해왔다. 봉씨는 “우연과 시류에 휩쓸려 오르는 게 아니라 질서와 원리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고 말했다. 예컨대 1000세대 이상의 대단지, 평지에 세워진 아파트 등이 오른다는 것이다. 봉씨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모든 아파트의 가격이 올랐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위치가 좋고 집의 상태가 좋은 우량 주택의 값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즉 아무 데다 묻어두면 오르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1999년 봉씨는 전환기를 맡게 됐다. DB 마케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닥스클럽’이라는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 봉씨는 “현재 100만명의 DB를 확보해 중매, 구직, 헤드헌팅 등에 활용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회원들에게 좋은 부동산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대신 봉씨는 조합 컨설팅에서 강연과 칼럼 쓰기로 주무대를 옮겼다. 2004년부터는 강연에 미국식의 부동산 쇼(show) 개념을 도입했다.
봉씨의 부동산 쇼는 3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딱딱한 강연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감상 시간을 갖거나 한국의 아파트 변화사(史) 등에 관한 동영상을 상영하기도 하면서 오락적 요소를 가미했다. 봉씨의 부동산 쇼는 1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진행된다. 초기엔 1000명을 모으는 데 2개월이 걸렸지만 최근엔 1주일이면 예약이 전부 찬다.
봉씨는 그 사이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거쳐 시가 30억원대의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50평대에 입성했다. 보증금 400만원짜리 월세 단칸방에서 살던 직장인이 20년 만에 30억원대 이상의 재산가가 된 것이다.
봉씨는 작년 7월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월세 단칸방에서 삼성동 아이파크로’라는 책을 펴냈다. 봉씨의 글은 상당히 쉽게 읽힌다. 봉씨는 “대학 때 꿈이 작가로 신춘문예에 응모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봉씨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돈 많은 사람보다는 봉급 생활자, 영세 사업자 등 돈을 굴리는 데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라며 “이들에게 쉬운 정보를 주기 위해서 인터넷에 무료 칼럼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향후 자산운용사를 인수하거나 제휴해서 ‘봉준호’ 또는 ‘닥터봉’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운 부동산 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자신의 현장 경험과 이론을 살려 누구의 돈이라도 불려주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