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상자' 고선웅 연출 "절망 통해 희망 전한다"

by장병호 기자
2019.10.09 06:00:00

SPAF 2019 초청작으로 재공연
中 라오서 동명소설 무대화
"추락하는 중인 것은 추락이 아니다"
17~20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연극 ‘낙타상자’ 출연 배우들이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한 연습실에서 가진 연습 공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극공작소 마방진의 연극 ‘낙타상자’ 공연 준비가 한창인 지난 8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한 연습실. 커다란 인력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연습실 정리에 분주하던 배우들이 인력거를 잡고 연습실을 누비기 시작한다. 몇몇 배우들은 택시를 잡듯 인력거 부르기에 여념이 없다. 연습실은 이내 작품 속 배경인 20세기 초반 중국 북평(지금의 베이징)의 풍경으로 변한다.

‘낙타상자’는 중국 근대 문학사의 대표적인 휴머니스트 작가 라오서(1899~1966)가 1937년 발표한 장편 소설을 무대화한 연극. 지난 5월 제40회 서울연극제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제19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SPAF)에 초청돼 오는 17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재공연한다.

연습 공개 후 기자들과 만난 고선웅 연출은 “‘낙타상자’는 1930년대 중국 북평에 상경해 인력거꾼으로 살아가는 청년 ‘상자’의 이야기로 절망에는 끝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절망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20세기 초반 중국을 무대로 한 이야기지만 지금 시대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고 연출은 밝혔다. 그는 “집을 장만하기 위해 돈을 벌다 보면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우리가 생각하는 희망은 우리를 녹록하게 반겨주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낙타상자’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연극 ‘낙타상자’의 고선웅 연출이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한 연습실에서 가진 연습 공개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




제목의 ‘상자’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중국어로는 ‘샹즈’라고 발음하지만 고 연출은 이를 한국식 이름으로 그대로 갖다 썼다. 인력거가 등장한다는 점은 동시대에 나온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연상시킨다. 고 연출은 “‘운수 좋은 날’이 처참한 이야기인 반면 ‘낙타상자’의 주인공 상자는 깨어 있는 청춘으로 에너지가 있다는 점에서 절망을 다루면서도 피폐하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중국 고전의 재현이 아닌 재치와 유머가 깃든 대중극을 표방한다. 시공간의 구분이 없는 무대에서 절제된 양식으로 20세기 초 인력거꾼 상자의 인생 역정을 통해 당시 하층민에 대한 잔혹한 수탈과 참상을 생동감 있게 그린다. 실제 공연에 등장하는 인력거는 극공작소 마방진이 직접 구매했다. 고 연출은 “인력거를 직접 만들기에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알리바바 등을 통해 구입했다”고 밝혔다.

주인공 상자 역은 배우 임진구가 맡는다. 임진구는 “절망적이고 슬픈 이야기지만 무대에서는 절망적이지 않게, 무겁지 않게 연기하려고 한다”며 “‘꽃은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난다’는 작품 속 대사를 되새기면서 작품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진구 외에도 홍자영, 장재호, 서창호, 장용철, 이정훈, 조영규 등이 출연한다.

고 연출은 “예전에 메모한 것 중 ‘추락하는 중인 것은 추락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며 “작품 속 상자는 희망을 찾지 못할지라도 이를 보는 관객은 희망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란 점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공연계 스타 연출가의 신작답게 지난 서울연극제 초연 당시에는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이번 SPAF 초청작 중에서도 티켓 판매가 순조로운 공연 중 하나다. 고 연출은 “초연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보다 안정적이 됐고 음악과 결말에도 작은 변화를 줬다”며 “연극은 계속 성장하는 것처럼 초연과 다른 공연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SPAF는 국내 최대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대표 국제공연예술축제로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올해는 지난 3일 개막했으며 오는 20일까지 18일간 서울 아르코예술극장·대학로예술극장·세종문화회관·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극장 등에서 열린다. 독일·덴마크·러시아·벨기에·이스라엘·프랑스·핀란드 등 7개국 해외작품과 불가리아 원댄스 위크와 협력 제작한 작품 및 10편의 국내 작품 등 한국까지 포함한 총 9개국 단체의 18개 작품을 선보인다.

연극 ‘낙타상자’에서 상자 역을 맡은 배우 임진구가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한 연습실에서 가진 연습 공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
연극 ‘낙타상자’ 출연 배우들이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한 연습실에서 가진 연습 공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