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속사정] 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되는 정치

by박경훈 기자
2019.08.10 06:02:02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실 박용규 비서관] 국회가 오랜만에 본회의를 열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미지수지만 ‘100일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추경안 제출 당시만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안보관련 이슈들도 있었지만 결국 최대 변수는 일본의 수출규제였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상황에 정국 최대 현안의 시작과 끝은 모두 일본이다.

‘일본’이라는 주제어가 정국에 던져지자 온통 난리다. 정치권에서는 정말 소모적인 반일, 친일 주장이 난무했다. 심지어 여당 대표의 ‘사케’논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 더이상 지지 않겠다는 ‘극일’로 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와 일본 관광 불허 등 보다 강도 높은 주장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특별위원회의 한 인사는 국회가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협상전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여러 옵션을 대 놓고 말할 수 없으니 국회가 대신해야 한다는 논리다. 비슷한 논리는 청와대에서도 나왔다. 청와대 전·현직 고위 인사들의 강경 발언에 대해서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다는 분석이 나왔던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맞는 말 같지만 과연 사태 해결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까.

적어도 국회와 정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하게 이 상황을 바라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래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국가의 정치에 ‘감정’이 더해지면 합리적 의사결정보다는 소위 포퓰리즘적 의사결정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와대 전·현직 인사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입장표명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야말로 종합적으로 국익을 판단해야 하는 자리다. 적어도 어떤 전제를 가지고 상황에 접근한다는 식의 선입견을 말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필요한 순간 적절한 표현이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 필요할 것이다.



정당이 지지를 얻기 가장 쉬운 길 중 하나가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 정당이 되는 것이다. 피아를 명확하게 구분해 내고 오랜 역사적 감정을 거론하는 것이 복잡한 정책을 통해서 지지를 얻기보다 이슈의 파급력이나 속도 측면에서 훨씬 더 효율적이다. 그리고 적어도 국내정치에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내야 한다. 국가간의 관계로 확장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우리는 아베 정부의 이번 수출보복 조치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그간 한일관계는 비록 역사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있지만 국가간 경제협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필요하며 글로벌 경제에서도 중요한 축이었다. 이런 자국 내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치가 국제경제에까지 악영향을 주는 지금의 상황이 일본의 수출보복에 대응하는 우리 정치가 경계해야 할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한일 간의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토대로 한 역사적 과제의 해결은 ‘정치’의 영역이 아닐까. 차갑고 냉정하고 외교적 해법을 통한 원만한 사태의 해결은 결국 ‘정치’의 역할이다.

여당의 정책연구원에서 한일갈등이 자당에 유리하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배포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국가적 위기 상황마저도 총선의 유불리 변수로 따져봤다는 것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정치에서는 할 수도 있겠지만 해서는 안될 일이 더 많다. 이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여야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많은 유혹에 빠지겠지만 그 순간에도 해서는 안될 일과 말이 있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국익이다. 국민적 감정을 자극해 국민을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감정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국익을 추구하는 자에게 국민의 지지가 뒤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