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적 가산금리]②집 담보 있는데 신용등급 낮다고…'이자 500만원 더 내라'는 은행

by박종오 기자
2018.10.22 06:00:00

'담보' 의미 사라진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방식 1%p까지 금리 차이
은행들 "연체·부실 위험 대비한 것" 변명
채무자 부실 때도 돈 떼일 일 없어…'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비난 여론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서울 강서구 염창동 ‘강변 힐스테이트’ 아파트(전용면적 59.9㎡형)를 구매하려는 A씨와 B씨. 직장인인 A씨는 평소 은행 거래나 카드 사용이 잦다 보니 신용등급이 전체 1~10등급 중 2등급으로 높은 편이다. 반면 개인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인 B씨는 주로 현금 거래를 하는 탓에 신용등급이 7등급이다.

둘은 시세 6억500만원(KB국민은행 기준)인 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한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2억원을 받을 생각이다. 거치기간 없는 만기 10년짜리 원리금 균등 분할 상환 방식(올해 1~8월 평균 대출 금리 기준)의 경우 10년간 갚아야 할 총 대출 이자는 A씨가 3710만원(연 3.48%), B씨가 4196만원(연 3.91%)으로 490만원 가까이 차이가 벌어진다. 은행이 똑같은 아파트를 담보로 잡으면서도 신용등급 낮은 B씨만 원리금을 못 갚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예상 손실 비용을 이자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은행이 저신용자에게 높은 대출 이자를 물리는 것은 분할 상환 방식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다. 대출기간에 이자만 내다가 만기에 원금을 갚는 만기 일시 상환 방식 대출도 신용등급별 금리가 다르다.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은행권 가계 대출 현황 자료를 분석해 봤더니 올해 1~8월 기준 일시 상환 방식의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 금리는 신용등급 5·6등급 대출자가 평균 연 4.15%로 1·2등급(3.69%)보다 0.46%포인트나 높았다. 신한·우리·경남·대구·광주·전북·농협·수협은행 등 1~6등급 대출자를 상대로 석 달 이상 일시 상환 방식 주택담보대출 취급 실적이 있는 8개 은행을 분석한 결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 중 만기 일시 상환 대출이 올해 1분기 현재 전체의 17%, 원금을 나눠 갚는 분할 상환 방식이 82%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별로 대구은행은 9·10등급 대출자에게 부과한 대출 금리가 연 5.44%로 1·2등급(3.83%)보다 무려 1.61%포인트 높았다. 우리은행도 9·10등급과 1·2등급 간 대출 금리 격차가 1.29%포인트에 달했다. 광주은행의 경우 중(中)신용층인 5·6등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4.65%로 1·2등급(3.66%)과 1%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벌어졌다. 대출 금리의 구성 요소 중 은행이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 등을 반영한 가산금리를 1·2등급(1.81%)보다 5·6등급(2.75%)에 더 무겁게 매겼기 때문이다.

은행은 이런 격차가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대출자 입장에선 집값의 일부만 대출받으니 주택 가격이 급락하지 않는 한 은행이 원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용이 좋지 않으면 금리를 다르게 부과할 수밖에 없다”며 “연체가 발생해 대출금을 회수하려면 법원 경매에 넣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은행 관계자도 “은행이 주택을 경매하는 과정에서 꽤 오래 손실을 안고 있어야 한다”면서 “정부의 대출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보 중심에서 신용등급 중심으로 바뀐 것도 등급별 금리를 차등하는 한 요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은행이 ‘땅 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를 하면서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이자 덤터기’를 씌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은 금융 당국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에 따라 지역별로 집값의 40~70%까지만 대출할 수 있다. 따라서 주택 시세가 폭락하지 않는 한 주택의 1순위 저당권자인 은행이 돈을 떼일 일도 사실상 없다. 집을 압류해 경매에 넘기면 대출원금보다 높은 금액에 낙찰되기 때문이다. 경매 전문 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이달(1~18일) 현재 아파트를 포함한 주거시설의 경매 낙찰가율(감정가격 대비 낙찰가격 비율)은 서울이 98.9%, 경기가 86.8%, 인천이 82.2%에 이른다. 서울·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아파트 낙찰가율도 82.1%로 낙찰가격이 시세의 80%를 웃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자칫 집값이 곤두박질해 은행이 대출금을 일부 떼이더라도 채무자에게 경매 처리 비용은 물론 남은 대출금 전액을 끝까지 받아낼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한다. 은행이 손실을 전혀 부담하지 않는 ‘소구적(recourse)’ 담보 대출이라는 얘기다. 국내 은행이 손실 가능성 없는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면서 저신용자에게 높은 이자를 물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이유로 신용등급별 금리 차가 생겼다고 설명하는 은행도 있다.

KB국민은행은 신용등급 1~5등급까지는 모두 같은 등급이라고 간주하고 주택 대출 금리를 책정한다. 이 은행 관계자는 “등급이 이보다 좋지 않은 저신용자에게는 0.01~0.02%포인트 정도만 가산금리를 부여한다”고 했다. 우리은행도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신용등급별로 대출 가산금리 차이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이 은행들은 왜 신용등급 간 주택담보대출 금리 차이가 생겼을까. 두 은행은 주요 거래 고객에게 대출 금리를 할인해주는 ‘우대금리’를 적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해당 은행을 통해 급여·공과금을 이체하거나 은행 계열 신용카드 이용 실적이 많을 경우 대출 금리를 낮춰주는데, 고신용자일수록 이런 주거래 고객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택 대출 금리도 내려간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정을 소비자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은행의 대출 금리 공시를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이 두 가지로만 나눠서 하기 때문이다. 고객마다 제각각인 우대금리 할인분을 제외하고 은행이 대출자에게 부여하는 실제 가산금리가 어떤 수준인지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또 일부에선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은 저신용자의 경우 거래 은행에 예·적금을 새로 들거나 카드 사용액이 많기 어려운 만큼 거래 실적에 따라 금리를 우대하는 영업 정책이 역차별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이 대출자의 ‘부도율’(부도 발생 가능성)과 ‘부도가 났을 때 손실률’을 곱해서 예상 손실을 계산하는데, 담보가 있으면 손실률이 낮지만 부도낼 가능성은 대출자별로 다를 수 있는 만큼 신용등급에 따라 일부 대출 금리 차이가 생길 수는 있다”면서 “우대금리의 경우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공시를 세분화하는 방안을 연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