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대못 한꺼번에 뽑는 건 불가능…신사업 실험할 '특구' 만들어라"
by윤종성 기자
2018.03.21 05:15:00
[초혁신시대, 산업의 미래는]
<끝>전문가 제언…文정부가 갈 길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이데일리는 신년기획 ‘초(超)혁신시대, 한국 산업의 미래는’ 시리즈를 통해 규제요소와 정부 정책의 문제점 등을 낱낱이 짚어봤다. 혁신의 중심이 된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 선전, 영국 런던 등을 현지 취재하면서 규제 개혁의 방향도 제시했다. 기사를 접한 재계, 학계 관계자들은 규제 혁파를 통한 신산업 성장의 필요성에 절대적인 공감을 표했다. 석달간 연재한 시리즈는 김태윤 한양대 교수, 이민창 조선대 교수,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박수홍 베이글랩스 대표의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한 지상 좌담회로 마무리짓는다. <편집자 주>
△김태윤 한양대 교수(이하 김 교수)= 한국 기업은 주어진 산업의 테두리 안에서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기업의 혁신에 대한 욕구와 열망을 정부의 정책과 규제, 사회분위기가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과중한 규제가 정부의 재량에 따라 마구잡이로 적용되니 기업의 입장에서 중심을 잡고 과감한 혁신을 도모하기 굉장히 어렵다. 암호화폐와 관련해 정부당국의 수장이 양극단을 오가는 언급을 하는 걸 봐라.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하 이 수석)=한국 기업의 혁신역량과 속도는 잘 줘봐야 50점 정도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을 하는 대기업들만 놓고 보면 최소 80점은 된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20점은 시장 개발에 필요한 역량 부족 , 규제로 인한 시장개발지체에 기인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에 대한 혁명적 접근’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정부도 규제를 개혁하려다 흐지부지 되곤 했다.규제 개혁 성공을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이민창 조선대 교수(이하 이 교수)= 규제 개혁은 한 번에 성공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다. 이해관계와 기득권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상황에서 개혁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규제개혁은 단순히 산업정책의 일환이 아닌, 우리 사회의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기에 장기적으로 봐야한다는 점, 그리고 규제 개혁은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박수홍 베이글랩스 대표(이하 박 대표)= 이전 정권도 규제 개혁을 논했지만, 스타트업, 벤처 기업인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없었다. 사회 전반의 모든 법안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규제 완화를 논의하기는 비용적, 시간적으로 너무 소모가 크다는 점에서 규제샌드박스나 규제 프리존 등을 도입해 풀어가야 한다.
△김 교수= 현 정부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와 규제샌드박스 도입은 혁명적 접근이 아니다. 이미 이전 정부에서 도입을 검토했던 것들이다. 현 정부가 제시하는 정책들은 매우 파편적, 부분적, 제한적이어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규제 개혁이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약속(commitment)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다소라도 흔들리면 수 없이 많은 이해관계자와 기득권자들이 틈새를 파고들어 국민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
△이 수석=오랜기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규제를 한꺼번에 제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규제가 풀린다고 신사업이 성장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신사업을 실행해 볼 수 있는 제한된 공간(특구)을 마련해야 한다. 규제만 건드리는 ‘규제 샌드박스’가 아니라, 사업까지 실행해보는 ‘샌드박스’가 필요하다.
△김 교수=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법률이지만, 문제는 이 법률의 정신을 구현하는 제도가 지나치게 둔탁하고 느리며 유연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데이터 문제만 해도 국내에서 데이터 유통을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해외 소셜 로봇을 국내 소비자가 들여와 사용하면 국내 소비자의 인적정보뿐 아니라 일상 생활정보까지 해외로 유출된다. 과거 구글 사태처럼 국민 정보가 송두리채 유출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면을 고려해 데이터 활용, 유통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이 교수=항공법, 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대표적이지만, 거의 모든 법률이 그렇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법들은 왜 바뀌지 않는 걸까. 규제에 의헤 보호 받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익 당사자들이 결속할수록, 영향력이 클수록 바뀌기 어렵다.
△박 대표=규제를 풀어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 자동차, 반도체, 조선에 의지할 건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이 많이 나와야 하고, 우리나라를 ‘테스트 베드’ 삼아 해외로 진출하는 스타트업들도 더욱 늘어나야 한다.
△이 교수=과거처럼 정부 주도로 경제체질을 개선하려 하니 문제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흐름을 읽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에 국한돼야 한다.
△이 수석=창업 활성화에 치우친 나머지, 기업의 성장을 위한 ‘사다리 정책’인 스케일업 정책에 소홀했다. 2000년대 국내 업체는 ‘세계 최초 또는 상업적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상품이 다수 출시됐다. 아이리버, 다이얼패드, e-스포츠, 오픈마켓, 아이리버스쿨, 싸이월드가 있었는데, 이들은 지금 흔적없이 사라졌거나 성장이 멈췄다. 사다리 없이는 지금 창업 기업들도 똑같은 상황을 맞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 교수=상당 부분 동의한다. 획일화된 기준 보다는 ‘성실한 실패’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사업 목적 달성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 정부 지원에 대한 감사도 이런 관점을 견지해야 일선 공무원들이 혁신 사업에 투자· 지원을 할 수 있다.
△김 교수= 혁신하지 않는 연명기업에 대한 보조가 문제다. 연명기업이 산업 생태계의 다수가 되면 나머지 건강한 기업도 연명기업으로 반진화 한다. 정부 지원은 중소기업인(사장님)이 아니라, 혁신하는 중소기업을 보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 수석=일본 아베 정부는 ‘세개의 화살’이라는 역사상 최강의 성장정책을 만든 다음, 기업에게 사업 개발 및 재편, 소득향상 등의 역할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현재 일본이 구인란을 겪게 만든 정책이다. 트럼프는 법인세 인하에다 국내환원세까지 만들어 자국기업의 해외 자금을 미국으로 들여와 사업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미국,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사업 여건을 만들어 주는 한편, 기업에게 비효율적· 한계 사업을 정리하라고 등 떠밀고 있다.
△박 대표= 스위스의 크립토밸리라는 지역은 암호화폐 특성화 지역으로 전세계적으로 ICO의 중심지로 각광받는다. 정부는 소극적 규제 개선에서 벗어나, 보다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다른 국가보다 뒤쳐진 혁신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
△김 교수= 대륙법계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법령체계는 법률이 산업을 규정하고 그 산업의 주요한 내용을 열거식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다양한 서비스의 창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우리나라의 산업관련법령은 대부분 제조업 위주라 서비스산업의 탄력성과 가변성, 속도감을 맞추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서비스 분야에 정부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는 혁신 없는 연명 기업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 것도 문제라 생각한다.
△이 수석=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내 시장’임을 주장하다가는 국내 소비자가 더 좋은, 새로운 서비스를 찾아 해외업체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그나마 경쟁력 있던 제조업체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 서비스발전에 대한 종합 대책을 서둘러 실행에 옮겨야 하는 이유다. 규제로 국내에서는 힘든 일부 서비스는 국가가 나서 해외와 협력하는 국제프로젝트를 개발할 필요도 있다. 70년대 국내 건설업처럼 말이다. 디지털 전략에 관심이 높은 아세안과 같은 신흥개발국이나 중동 국가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수석= 대기업이라고 안정적인 사업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대기업 단독으로 모든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어려워진 시대인데, 대기업을 배제한 정책 대응은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대기업을 활용해 한국 주도의 산업생태계(독일의 인더스트리 4.0)를 만들거나, 아니면 해외 산업생태계에 국내 업체들이 편입될 수 있는 역량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 기업, 학계가 공동 참여해 기술 개발, 규제 해소, 인력양성, 세금문제 등을 종합 고려해 미래의 산업구조재편을 구축하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박 대표=미국 및 중국과 같이 창업이 활성화 된 국가에서는 신생 유니콘 기업들이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우리도 창업 → 성장 → 회수 → 재창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사이클이 만들어져야 기존 대기업 의존형 경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권 임기 내 짧게 실행하다 마는 정책이 아닌 다년간의 로드맵이 수립되고, 정권이 바뀌어도 연속성 있는 정책 발굴들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