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추문 논란에 책임질 사람은 또 없는가

by논설 위원
2018.02.20 06:00:00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과거 자신의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법적 책임을 포함해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것이 그가 어제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고도 했다. 국내 연극계를 대표할 만큼 명성을 떨치던 무대감독이 배우들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폭로가 잇따르면서 떠밀리다시피 은퇴를 선언하고 사과 성명까지 내야 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각계에 번지고 있는 여성계의 ‘미투’ 운동의 여파로 생긴 결과다.

비단 이윤택 감독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영화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확인되고 있으며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여승무원 신체접촉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심지어 문단의 원로로서 노벨상 단골 후보자로 거론되던 고은 시인까지 후배 여성 문인들에 대한 성추문 사실이 드러난 마당이다. 그가 수원시로부터 제공받고 있는 작업실을 비워주기로 한 데다 서울도서관에 마련된 그의 기념공간이 다른 용도로 바뀔 것이라는 점에서도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이미 공개된 박범신 소설가의 사례까지 포함해 우리 문단에 중견 작가들의 성추행이 하나의 관습처럼 이어져 내려온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성추행 범죄를 다스려야 하는 검찰과 경찰 내에서도 부하 여직원들에 대한 위험한 농담과 손버릇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현직 부장검사가 성범죄 혐의로 긴급 구속된 단계이니만큼 입이 열 개가 있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 오죽하면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가 차후 따를지도 모르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이 겪은 상황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폭로했을까.

그러나 일시적인 폭로 움직임으로는 성추행 등 사회적인 여성비하 인식을 바로잡는 데 한계가 있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과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에 대한 구설수가 이어지는 것이 그 증거다.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도 과거 술자리 발언이 유야무야되고 있으며, 여성 비하 표현으로 논란이 됐던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거취 문제도 그대로다. 아무리 문제가 불거져도 끗발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