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읽어주는 남자]朴 대통령의 히잡과 대우조선의 운명

by김도년 기자
2016.08.20 07:40:02

이연법인세자산 1조, 작년 결산시 ''이란發 특수'' 고려해 손실 돌변 안해
올 1분기 ''朴 대통령 히잡 효과'' 기대감 불어 여전히 자산 인정
올 상반기 이란發 특수 없고 부정적인 미래 수익 전망으로 손실 돌변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에서 쓴 히잡과 대우조선해양(042660)의 운명. 중동에서 대통령이 두른 천 쪼가리 한 장이 국내 초대형 조선사의 1조원대 손실이 석 달 뒤에 터지도록 시간을 벌어줬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듣고 보면 아주 말이 안 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 이 참에 이연법인세자산에 대한 개념도 확실히 알고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우조선의 2015 회계연도 결산 재무제표를 보면 1조1366억원의 이연법인세자산이 자산항목에 잡혀 있습니다. 이연법인세자산이란 기업회계로 계산한 법인세가 세무회계로 계산한 법인세보다 작을 때의 그 차액인데요. 앞으로 국세청에 납부할 세금에서 공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산으로 보지만 과세 소득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면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쉽게 말해 회사가 미래에 충분한 수익이 발생한다는 전망이 있을 때만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미래 수익 전망이 부정적이면 손실로 돌변합니다.

작년 하반기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봅시다. 대우조선은 6월말 결산을 하며 3조2000억원대 대규모 영업손실을 발표합니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에 이어 대우조선까지 대규모 어닝쇼크를 내 조선업에 대한 시장 시각이 더욱 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분식회계 의혹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평가하는 회사채 신용등급이 내려 상반기 A등급에서 연말에는 투기등급(BB+)으로 추락했습니다.

삼정회계법인의 정밀 실사보고서는 이연법인세자산이 손실로 돌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가 될수도 있었습니다. 작년 10월에 마무리된 실사 결과 대우조선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적게는 78억원, 많게는 4909억원의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는 이연법인세가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금액을 훨씬 밑도는 수치였습니다. 고민하던 대우조선은 작년 12월 한영회계법인에 이연법인세자산에 대한 자산성 판단을 해 달라는 용역을 줬습니다. 한영회계법인은 2016년 1월부터 이란 경제제재가 해제됨에 따른 이란발 특수 효과를 내세워 이연법인세자산을 자산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답변을 해줍니다. 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4조2000억원 규모 유동성 지원도 자산성 평가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을 겁니다. 이 한영회계법인의 용역 결과를 기반으로 대우조선은 이연법인세자산 1조1366억원을 자산으로 반영했고 당시 외부감사인이었던 안진회계법인도 이견을 제기하진 않았습니다.



지난해 결산은 그렇게 넘겼습니다만 3개월이 지나면 또 한 번 심판의 날이 다가옵니다. 이번엔 자유수임 방식으로 계약한 감사인이 아니라 정부 지정 감사인으로 온 삼일회계법인의 검토를 받아야 합니다. 부실 우려 기업은 좀 더 꼼꼼한 회계감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지정한 감사인으로부터 회계감사를 받게 되지요. 아니나 다를까 삼일회계법인은 1분기보고서를 검토하면서 대우조선에 이연법인세자산의 자산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신규 수주가 한 건도 없었는데 이를 자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느냐고 따진 겁니다. 대우조선은 이란의 경제제재 해제 효과가 나타나려면 석 달로는 부족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던 찰라. 박근혜 대통령이 5월1일 이란을 국빈 방문했습니다. 히잡을 두른 대통령이 테헤란 메흐라바드공항에 내리는 사진이 전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는 여성단체의 비판과 무슬림의 전통을 왜 따르느냐는 기독교단체의 반발에도 대통령은 히잡을 두르고 세일즈 외교에 나선 것이죠. 당시 증권가에선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 효과로 국내 조선사들의 신규 수주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을 담은 리포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우조선의 1분기보고서는 5월15일까지 마무리돼야 하는데요, 5월 초에 있었던 국빈 방문은 삼일회계법인의 분기 검토에도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히잡 효과’에 대한 기대가 여의도 증권가에 흐르는 가운데 대우조선의 이연법인세자산은 올해 1분기에도 또 한 번 자산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3개월이 흘렀습니다. 올해 상반기 재무제표가 나와야 할 시점이 됐지요. 이번에도 신규 수주 실적은 극히 미미했습니다. 해외 현지법인 실적까지 끌고 들어와서도 고작 7억달러에 그쳤습니다. 기대했던 히잡 효과는 없었습니다. 냉혹한 시장 논리는 여성 대통령이 나서서 히잡을 두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자산가치를 상실한 이연법인세자산 8500억원은 그래서 손실로 돌변했습니다. 만약 ‘히잡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다면 대우조선은 올해 1분기에 이미 이연법인세자산이 손실로 돌변해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두른 히잡이 석 달 동안의 시간을 벌어주는 효과는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겠지요. 이란발 특수는 없었지만 희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 조선업 경기가 바닥을 치고 수주 실적이 반등하기 시작하면 이연법인세자산은 다시 자산성을 회복해 재무제표상의 자산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강도 높은 자구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자산을 팔고 사람을 자르는 것처럼 수익성과 상관없는 대책만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대안을 좀 내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