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전세 올랐다고 우리집 월세도 올리자니…
by박종오 기자
2015.06.02 06:00:00
잠실 리센츠아파트 85㎡형
전셋값 1억5000만원 뛰자
두달새 월임대료 20만원↑
전세난에 월세거래 증가세
집주인 "우리도 올려" 배짱
[이데일리 박종오 김성훈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전용면적 84㎡형 아파트에서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을 내고 월세살이하는 정모(여·34)씨. 그는 지난달 재계약을 위해 집주인의 대리인 사무실을 찾았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 10만원을 올려줬다. 현행법상 월세는 한 번에 5%를 초과해 올릴 수 없다. 그러나 계약 연장이 아니라 재계약인 까닭에 월세 10%를 더 얹어주고도 정씨는 하소연조차 하지 못했다.
| △최근 이사 비수기에도 고공 행진 중인 전셋값을 따라 월세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진=국토지리정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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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따라 주택 월세가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기록적인 저금리에 따른 전셋집 공급 감소와 전셋값 상승, 월세 거래 증가에 이은 당연한 순서라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집값이 오르면 전세금도 같이 상승하는 것처럼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를수록 월세로 돌리는 금액도 커진다”며 “임대료가 전반적으로 함께 인상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1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지역 주택 월세는 0.1% 오르며 2개월 연속 상승했다. 재건축 이주 수요 등이 몰린 한강 이남 지역 11개 자치구 월세가 0.2% 오르면서 월세 상승을 견인했다. 특히 강남 지역 내 아파트 월세는 4월 0.4%, 5월 0.3% 올라 2012년 11월(0.6%)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시장에서 체감하는 월세 상승 수준은 이보다 더 가파르다. 예컨대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전용면적 85㎡형은 보증금 3억~4억원에 110만~120만원 꼴이던 월세가 두 달 새 130만~140만원으로 뛰었다. 이 지역 대성리센츠 공인의 최원호 대표는 “월세가 오른 건 순전히 전세 때문”이라며 “이 주택형 전셋값이 지난해 이맘때 6억 5000만원에서 1년 새 8억원까지 치솟자 집주인들이 월세도 같이 올려 받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서초구 반포동의 최고가 아파트인 래미안 퍼스티지 전용 85㎡형은 지난 4월 보증금 2억원에 월세 350만원에 실거래됐다. 올해 1~3월까지만 해도 보증금 1억원, 월세 330만~380만원 선에 임대차 계약이 이뤄졌던 매물이다.
공급 과잉에 시달렸던 오피스텔 월세도 꿈틀대고 있다. 도시형 생활주택 등 한때 서울·수도권 원룸 임대료 하락을 주도했던 소형 주택 공급이 최근 주춤한 영향이다. 강서구 가양동 이스타빌 2차 전용 32㎡형에 월세로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32)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주변 시세가 올랐으니 현재 보증금 1000만원에 52만원이던 월세를 3만원 높이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참에 이사하려고 주변 다른 오피스텔을 찾아보니 대부분 월세가 5만원 정도 올랐더라”라며 “동네를 떠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보다 월세화 속도가 빠른 빌라(연립·다세대주택)는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하는 이자율마저 상승세다. 감정원 자료를 보면 올해 3월 전국의 빌라 전·월세 전환율은 연 8.3%로 2개월 내리 0.1%씩 올랐다. 전세금 조달 능력이 떨어지는 영세 세입자들의 월세 전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전·월세 쌍끌이 상승 시대’의 주거비 증가 문제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미비한 월세 통계다.
실제로 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8개 시·도의 주택 월세는 2012년 11월(0.1%) 이후 단 한 차례도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간 3%가 내렸다. 반면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세입자가 실제로 낸 금액을 반영한 월세지수가 하락한 것은 2006년 4월 이후 올해 2월뿐이었다. 두 통계 모두 조사 표본 수가 각각 3000가구와 5500여 가구에 불과하고, 감정원의 경우 전체 표본 중 월세 보증금 비율이 전세 시세의 70%를 넘는 ‘반전세’(보증부 월세)가 20가구조차 안 돼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보증금 전액을 월세로 환산해 가격 지수를 계산하는 감정원의 동향 조사는 요즘처럼 전세금이 급등하면 전·월세 전환율이 하락해 월세가 내린 것으로 나타나는 ‘치명적 결함’마저 있다.
사정이 이렇자 정부도 부랴부랴 통계를 보완하겠다며 나서고 있다. 전국에 월세 사는 집이 전세 사는 집보다 많아진 지 3년 만이다. 국토교통부는 감정원과 함께 2일 세미나를 열고 월세 통계 개선 방안을 논할 예정이다. 순수 월세·반전세 등을 아우르는 통합 월세지수와 전·월세 통합지수 등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월세 실거래 비중을 보면 20만~30만원 대 저가 주택이 가장 많지만, 실제 월세 상승 체감도가 높은 건 100만~200만원 대 아파트 월세 거주자들”이라며 “광범한 지역 시세를 단순 평균하면 변동률이 작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지방자치단체가 더 세분화한 통계를 만들어 맞춤형 정책을 펼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