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재무부는 ‘세계금융 CIA’

by조선일보 기자
2006.09.14 07:56:40

월街·130國금융기관에 영향력
북한.이란 해외돈줄 끊기 주도

[조선일보 제공] 미국이 북한과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에 착수하면서, ‘재무부의 파워’가 주목받고 있다. 미사일 발사와 위폐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과 핵개발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는 이란에 대해, 미 국방부나 상무부가 아니라 재무부가 중심이 돼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 재무부 관리들은 전 세계를 순방하면서 이 두 나라로 흘러 들어가는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 자금을 차단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은 지난 7월 아시아 지역을, 이번주에는 유럽 국가들의 재무당국과 민간금융기관들을 접촉했다. 패트릭 오브라이언 테러자금 담당 차관보는 중동지역을 순방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최근 베트남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 회의와 다음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총회에 참석해 돈세탁과 불법자금거래 차단을 촉구할 방침이다.



미 재무부가 이렇게 대 테러전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 스트리트를 주무르고 있는 덕분이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때 G7(선진 7개국)이 한국에 100억달러를 빌려주는 데 반발하는 월가(街) 인사들을 누른 것은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이었다. 루빈 전 장관, 폴슨 현 장관, 레비 차관, 로버트 스틸 국내재정담당 차관 등 월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대거 기용된 것도 월가에 대한 영향력 유지와 관련이 있다.

재무부는 또 130여개국과 체결한 양해각서를 통해 해당 국가들의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재무부가 해외자산통제법에 근거해 북한과 거래하는 미국 내 기업이 하루 1만달러 이상을 송금한 사실을 금융기관이 알았을 때 이를 즉시 보고하지 않으면 수백만~수천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해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실제로 북한의 위폐를 돈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은 미 재무부 조사로 고통을 겪었다.

재무부에서 안보기능을 수행하는 부서는 테러·금융정보 차관실이다. 그 산하의 외국자산통제국과 금융범죄단속반이 핵심라인이다. 이 중 외국자산통제국은 테러, 마약, 국제범죄 자금을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기능 때문에 ‘금융분야의 중앙정보국(CIA)’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실제로 9·11 테러 이후 2004년까지 재무부는 관련자금 1억4100만달러를 동결했고, 전 세계 1600여 개의 테러관련 계좌와 거래를 차단했다.

재무부가 이런 수사기능을 갖게 된 것은 1860년대부터. 경찰이 위조지폐 단속에 실패하자 재무부에 비밀검찰국이 설치됐다. 1890년대부터는 SS(Security Service)국에서 대통령 경호도 맡기도 했으나 이 기능은 2002년 안보기능 통폐합 조치에 따라 국토안보청으로 이관됐다. 이후 1920년대 금주법 시행에 맞춰 연방수준의 경찰조직을 창설, 범죄단속에 나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