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미영 기자
2022.11.26 09:00:00
‘청담동 술자리’ 첼리스트 “전 남친 속이려 거짓말”
황당무계한 거짓말, 정국 흔들어
1200여개 성착취물 만든 ‘엘’ 용의자, 호주서 검거
수원 세모녀 후 석달만에 또…서대문서 모녀 사망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한달 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폭로성으로 제기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황당한 거짓말에서 시작된 걸로 파악됐습니다. 처음 이 발언을 한 첼리스트 A씨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그 내용이 다 거짓말이었다”고 진술한 걸로 전해집니다. 일반인 한 사람이 사적으로 한 황당무계한 거짓말이 ‘해프닝’을 넘어 정국을 뒤흔들었단 게 허탈할 지경입니다.
조주빈·문형욱에 이어 미성년자에 성착취 영상을 찍게 하고 배포한 ‘제2 n번방 사건’의 주범 ‘엘’을 경찰이 이역만리까지 쫓아가 잡았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에선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걸로 추정됩니다. 수원 세모녀 사건 이후 석달 만에 다시 ‘복지 사각지대’에서 이뤄진 비극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법무법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이 서울 강남 청담동에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는 발언을 처음으로 한 A씨가 지난 23일 경찰에 출석, “전 남자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지난 7월 19일 서울 청담동의 한 술집에 윤 대통령, 한 장관, 김앤장 변호사 30여명과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 권한대행 등이 한자리에 모여 자정 넘은 시각까지 술을 마셨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봤다고 말하는 A씨 발언 녹취가 A씨 전 남자친구에 의해 유튜브 기반 언론매체인 시민언론 더탐사(더탐사TV)에 넘어갔고,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장에서 이 녹취 파일을 공개하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후 전개된 건 정치권의 공방, 고발전입니다. 김 의원을 향해 “저는 다 걸게요, 의원님은 뭐 거시겠어요?”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한 장관은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김 의원과 더탐사 관계자들 등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습니다. 이세창 전 총재는 펄쩍 뛰고 대통령실은 발끈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일부 지도부까지 가세해 공방은 한달 넘게 지속됐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인 건사랑, 친여 성향 시민단체 새희망결사단 등도 A씨를 비롯해 더탐사TV 관계자들, 김 의원 등을 고발했습니다.
A씨의 경찰 진술이 전해지면서 의혹은 일단락된 모양새이지만, 고발전 여파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김 의원은 “심심한 유감”을 표했지만, 한 장관은 “사과 필요 없다, 법적 책임을 지라”고 했습니다.
2020년 12월 말부터 올해 8월 15일까지 약 1년 8개월 동안 미성년자 최소 9명을 협박해 만든 성착취물 1200여개를 텔레그램 등에 유포한 혐의를 받는 ‘엘’. ‘제2 n번방’ 사건의 주범인 ‘엘’로 지목된 용의자가 호주에서 붙잡혔습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20대 중반 남성 B씨를 호주 경찰과 공조해 지난 23일 검거했습니다.
‘엘’은 2019년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불꽃’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 더 큰 공분을 샀던 이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추적단불꽃’ 등을 사칭해 마치 도와줄 것처럼 하거나, 같은 피해를 보고 있는 다른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텔레그램 접속을 유도하고 피해자를 협박해 알몸이나 성착취 영상을 찍게 했습니다. 수시로 텔레그램 대화명을 바꾸고, 성착취물 유포 방을 개설·폐쇄를 반복하면서 범행을 이어갔습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 8월 말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잠적했습니다.
경찰은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분석해 B씨의 신원을 특정, 지난달 19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내렸습니다. 호주 현지 경찰과 합동으로 벌인 공조 수사(인버록 작전)로 시드니 교외에서 B씨를 체포해 구금 중입니다.
B씨를 언제 송환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있을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호주 경찰이 B씨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 및 제작 혐의 등으로 기소하겠단 의지를 밝혀, 호주의 사법 처리 결과에 따라 B씨 국내 송환이 결정될 것이란 설명입니다.
지난 23일 서대문구 한 다세대주택에서 60대, 30대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세입자가 사망한 것 같다’는 집주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서입니다.
모녀는 생활고를 겪은 정황이 짙었습니다. 집 현관문에는 연체된 5개월치 전기료 9만원을 독촉하는 고지서, 월세가 밀려 퇴거를 요청하는 집주인 편지 등이 붙어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집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원으로 집을 빌린 뒤 10개월 치 월세가 밀려 보증금은 모두 공제됐고, 건강보험료 14개월치(약 96만원), 통신비 5개월치(약 15만원)도 밀렸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직전 주거지인 광진구청은 올해 8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통해 모녀가 각종 공과금이 연체된 사실을 알아챘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에 포함했습니다. 하지만 모녀는 이미 서대문구에 전입신고 없이 새 주거지를 얻은 뒤였습니다. 지난 8월 숨진 수원 세모녀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발굴’되지 못했고, 지자체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녀의 사망이 알려진 다음 날인 24일, 보건복지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내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