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공급망 통상전쟁 시대의 항공모함 'CPTPP'
by권효중 기자
2022.05.03 06:15:00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최근 코로나로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국제적으로 물류 병목현상과 부품 수급난이 발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와 원자재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고, 밀, 식용유 등 가격급등이 우리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공급망 교란은 상시화되었고, 미중 패권경쟁과 우크라이나 사태는 공급망의 위기와 분절(decoupling)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그야말로 ‘공급망 통상전쟁’의 시대이다. ‘시계제로’의 통상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다. 통상정책의 지상목표도 분명하다. 우리 산업과 기업이 공급망 통상과 기술패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안정적이고 강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통상정책과 산업정책이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스스로 강한 공급망을 갖추기 위해 우리도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등 전략산업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공급망을 국내에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목받는 것이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다.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끼리 더욱 촘촘하고 안정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85%를 커버하는 59개국과 체결한 22건의 광범위한 FTA 네트워크는 우리나라가 보유한 큰 무역통상 자산이며, 특히 이런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우리 기업들을 전세계 시장으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이를 통해 작년 역대 최대의 수출과 투자유치 실적, 경제 회복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공급망 시대에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프렌드쇼어링 시대에 걸맞게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다양한 경제블록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커졌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놀이공원에서 ‘개별 이용권’이 아닌 ‘자유이용권’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공급망에 참여하고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4월15일 CPTPP 가입계획을 의결했다. 2013년에 CPTPP의 전신인 TPP에 관심을 표명한 지 8년여만의 일이다. CPTPP는 멕시코, 베트남, 일본 등 아태지역의 주요 11개 교역국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 교역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영국이 신규 가입협상을 진행 중이며, 중국, 대만, 에콰도르 등도 가입 신청을 마쳤다. 더 이상 늦출 때가 아니다.
CPTPP 가입으로 얻는 경제적 실익도 상당하다. 철강, 석유화학, 가전, 섬유 등 제조업의 수출확대 뿐만 아니라 K-뷰티, K-콘텐츠 등 한류 유망산업의 활발한 해외진출이 기대된다. 디지털 무역규범을 활용하여 핀테크, 헬스케어, 에듀테크 등 디지털 강소기업의 성장 기회도 확대될 것이다. 멕시코, 베트남 등 신흥국가들의 정부조달 시장도 새롭게 열리게 된다. CPTPP 추진은 역내 주요국들과 연결된 우리의 공급망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며, 우리 기업과 산업에 또 한번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다.
반면, 우리의 농수산업, 중소기업 등은 민감한 분야이다. CPTPP 추진 과정에서 농수산업, 중소기업 등 취약분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중점을 두고 챙길 것이다. 특히 우리 농수산업 보호, 식량안보, 먹거리 안전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들이다. 정부는 이해관계자와 계속 소통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을 추진하고, 피해분야 보상과 경쟁력 강화 등 보완대책을 충실히 마련해 나갈 것이다. 10년 전 한·미 FTA 추진시에도 소고기 시장개방, 스크린 쿼터제 등에 따른 큰 피해를 우려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 개방은 우리 산업을 한층 강하게 만들었고 한류에 따라 K-푸드 열풍으로 작년 우리 농수산물의 수출은 사상최대인 114억불로 이미 가전제품 수출 87억불을 넘어섰다.
오바마 정부 당시 ‘TPP는 또 다른 항공모함을 갖는 것처럼 중요하다’고 했던 미 국방장관의 비유는 이러한 경제블록이 갖는 경제안보적 함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CPTPP라는 또 다른 담대한 도전의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향후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