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예능에 드라마까지..'힙한 음악' 국악, 얼씨구 좋다~
by장병호 기자
2021.03.11 06:00:00
[국악, 이제는 ''조선팝''①]
이날치 ''범 내려온다''로 시작된 열풍
KBS 국악프로 ''조선판 어게인'' 호평
"민족주의 벗어나 대중음악으로 어필"
[이데일리 장병호 김현식 기자] 지난해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로 시작한 국악 열풍이 2021년 ‘조선팝’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치 외에도 악단광칠, 추다혜차지스, 경로이탈 등의 팀들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팬층을 넓혀가며 국악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지상파 TV도 국악 소재 예능 프로그램 및 드라마 제작에 나서는 등 국악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점점 달라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 국악방송이 지난달 22일 밴드 이탈경로와 함께 선보인 창립 20주년 홍보영상. 판소리 ‘흥보가’를 세련된 음악과 영상미로 재해석해 유튜브에서 7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사진=국악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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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방송은 최근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해 ‘21C 한국음악 프로젝트’ 우승팀인 밴드 경로이탈과 함께한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흥보가’의 박 타는 대목을 흥겨운 밴드 음악으로 재편곡한 것으로 대중가수들의 뮤직비디오 못지않은 영상미로 담았다.
지난달 22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이 영상은 2주 만에 7만 7000여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국악방송 유튜브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높은 조회수다.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국악방송 영상까지 힙할 줄 몰랐다” “눈과 귀가 즐겁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국악방송 관계자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세련된 분위기로 영상을 제작했는데 예상보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해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악 열풍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함께 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관련 영상이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뒤 대중이 이와 비슷한 다른 팀들의 음악을 유튜브를 중심으로 찾아 들으면서다.
외국인들도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10월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밴드 악단광칠의 ‘영정거리’ 영상에 한 외국인은 “내가 왜 여기에 중독된 건가? 내가 한국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Why am I addicted to this? I think I’m becoming Korean!)라는 글을 남겼다. 밴드 추다혜차지스가 생기스튜디오에서 선보인 ‘리추얼 댄스’ 영상에는 “이 밴드는 ‘진짜’ 한국 음악이 추구해야 할 길의 지속 가능한 힘을 보여주는 것 같다”(the band seems to show the way where the long-lasting power of the REAL Korean music should pursue!)는 극찬이 올라오기도 했다.
국악 열풍에 힘입어 전통국악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국립국악원 유튜브 채널은 지난해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가 발표한 ‘대취타’의 영향으로 지난해만 구독자 수가 1만명 이상 늘어났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대취타’ 소개 영상이 30만 조회수를 기록하는가 하면, 상설공연인 토요명품공연에도 지난해 20~30대 관객이 늘어나는 등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설 연휴 방송된 KBS2 ‘조선팝 어게인’에 출연한 밴드 이날치(사진=K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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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도 국악 열풍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KBS는 지난 설 연휴 음악프로그램 ‘조선팝 어게인’, 판소리 뮤지컬 드라마 ‘구미호 레시피’ 등 국악을 소재로 한 이색 프로그램을 파일럿으로 선보였다.
‘조선팝 어게인’은 이날치, 악단광칠을 비롯해 판소리를 전공한 트롯 가수 송가인, 소리꾼 조유아, 서진실 등이 출연해 국악이 고루한 음악이 아닌 대중적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악임을 확인시켰다. 웬만한 인기 예능 못지 않은 7.5%(닐슨코리아 집계, 전국 기준)라는 시청률도 의미가 컸다. ‘구미호 레시피’는 국악인 하윤주, 김나니, 이희문 등이 배우로 출연해 국악으로도 다양한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훈희 KBS 제작2본부장은 “이날치의 영향으로 국악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해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했다”며 “‘조선팝 어게인’의 경우 시청률은 물론 국악을 소재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괜찮은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이 본부장은 “국악 소재 프로그램이 당장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지는 않겠지만 국악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가져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국악 열풍을 소비방식의 대중적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현경채 국악평론가는 “과거엔 국악이 ‘우리 음악이니까 들어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호소로 대중에 다가갔다면 지금은 대중과 충분히 어울릴 수 있는 음악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며 “국악계에는 하나의 분기점이라 할 만한 변화”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전통으로서 국악을 지키는 것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면서 “이날치처럼 전통을 지키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활동을 하려는 노력이 국악계 내부에서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악이 대중화하지 못한 것은 그동안 여러 변화와 시도를 알릴 창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공연이든 방송이든 국악이 대중적인 장르임을 알릴 창구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