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성기 기자
2021.03.10 06:00:00
[이데일리 이성기 김겨레 기자] “우리의 목적을 묻는다면 한 마디로 승리이다.”
지난해 8월 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60.77%의 압도적 득표율로 거대 여당 수장 자리에 오른 이낙연 대표는 윈스턴 처칠이 2차 대전 때 했던 말로 각오를 대신했다. `어대낙`(어차피 대선후보는 이낙연)이란 수식어와 함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도 1위를 달리던 그는 `당권·대권 분리`라는 당헌·당규에 따라 대표 선출 192일 만인 9일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당 대표라는 `계급장`을 떼고 본격적인 차기 대권 경쟁 무대에 오르는 셈이다. 상임선대본부장으로 4·7재보궐 선거를 이끌어야 하는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거에서 승리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민국이 ‘함께 잘사는 세계 선도국가’로 나아가도록 하는 미래 비전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당 대표 출마 당시 주위에선 말리는 이가 많았다. 문재인정부 최장기 국무총리로 한 때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40%를 웃도는 지지율을 기록했던 그에게 자칫 `독배`(毒杯)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6개월 여의 짧은 임기를 마친 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지사에 이어 지지율 3위까지 밀려난 상태다.
이 대표는 퇴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극복과 민생 안정, 경제 회복이란 국가적 과제 앞에서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이익과 손해를 따지기 전에 지난해 여름으로 돌아가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율은 잃었지만, 재임 기간 코로나19 확산 속에 거여 수장으로 보여준 성과는 적지 않다.
재정 당국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이끌었고, 특히 4차 재난지원금 규모는 당의 주도로 20조원 수준까지 확대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이 대표가 그렇게 무섭게 (홍남기 부총리 등을) 질타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당시 `당이 정부의 도구인가``애국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는 등 강한 어조로 홍 부총리 등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반발 속에 권력기관 개혁 3법 (공수처법·국정원법·경찰청법 개정안),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뿐만 아니라 5·18 진상규명특별법과 제주 4·3 특별법 등 과거사 특별법도 통과시켰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일부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집권 5년차 문재인 정부 막바지에 여당을 안정적으로 운영했다”면서 “문 정부가 약속한 민생과 경제, 개혁 입법 등을 혼신의 힘을 다해 처리한 것은 굉장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산업현장 사망·사고를 막기에 부족한 내용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리됐다는 비판도 받았고, 연초에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필요성 발언으로 여당 지지자들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 대표는 “언젠가 해야 할 과제로 생각한 것은 사실이나 모든 문제가 그렇듯 국민들의 마음을 좀 더 세밀하게 헤아려야 한다는 아픈 공부가 됐다”고 돌이켰다.
`이대만`(이대로 대표만)에 그칠지 차기 여권 주자로 다시 우뚝설지 본격적인 게임은 지금부터라는 시각이 많다.
첫 관문은 4·7 재보선 성적표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차기 대선 전초전으로 불리는 만큼, 최소한 서울시장 보선 승리를 거머쥐어야 반등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재보선에서 패배할 경우 반등의 계기 마련은커녕 거센 `불가론``회의론`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엄중 낙연` 등 그간 자신을 옭아매었던 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지난달 초 인터뷰에서 “(대표직을 내려놓으면)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란 예고처럼, 최근 예능 파일럿 프로그램에도 직접 출연하는 등 주위에선 달라졌다는 얘기가 많다.
특히 절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를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요즘 의원들을 만나면 도와달라는 말을 직접 건네기도 하고 청와대 전 고위 관계자에게도 세 차례나 도움을 요청했을 정도”라면서 “주위 보좌진에게 ‘고생한다’는 문자도 보내는 등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을 본다”고 귀띔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속에서 차별화 한 `이낙연표`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남은 과제다.
박 정치평론가는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 하면서 ‘왜 이낙연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창의적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민생활기준 2030 범국민특위` 토론회 기조연설을 통해 신(新)복지 제도 첫 번째 정책으로 `돌봄 국가책임제`를 제안했다. 박수현 홍보소통위원장은 “퇴임 날 특강 `돌봄 국가책임제`와 이 지사의 `기본소득`, 미래담론 토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과거처럼 굴뚝 산업 성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 혁신 성장 외에 대안이 없다”면서 “회복과 포용, 도약의 신복지가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여권 잠룡(潛龍)에 머무를지, 정권 재창출의 선봉장이 될지는 이 대표의 시대정신이 공감대를 얻는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