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화려한 부산은 잊어라…'봄향' 가득한 기장
by강경록 기자
2019.03.08 05:00:00
부산 기장 봄맞이 여행
풋풋하고 소박한 어촌마을 ''연화리''
멸치 고깃배 대신 만난 미역 감는 해녀
윤선도가 반한 해변길을 따라 달리다
| 일광해수욕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관광객. 미세먼지가 거의 없어 봄바람과 봄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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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미세먼지가 온 나라를 덮었다. 산과 들을 매만지며 불어오는 훈훈한 바람의 진원지는 남녘일진데, 서풍에 밀려온 미세먼지에 봄바람도 맥을 못춘다. 그나마 멀리 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찾은 곳은 동해안. 그래도 불안해 더 멀리 떨어진 부산 기장으로 향했다. 굽이굽이 이어진 해안도로를 따라 싱그러운 봄내음과 푸릇푸릇한 봄빛, 자글자글한 온갖 봄 소리가 담긴 봄바다 풍경이 그리워서다. 차장 안으로 미세먼지 대신 봄바람과 봄바다를 가득 채우며 해안길과 포구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 영화 ‘친구’의 촬영지인 대변항 주변의 해안가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 강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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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하고 소박한 어촌 마을 ‘연화리’
부산에서 내로라하는 곳 대부분은 바다를 품었다. 해운대와 광안리, 남포동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깡통시장 모두 부산 바다를 지척에 두고 있다. 부산 바다는 낙동정맥의 종점인 다대포를 시작으로 송도~태종대~광안리~기장 등이 남해에서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동해로 이어진다.
기장으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해운대를 지나 달맞이 고개를 넘으면 동해다. 바다가 남해에서 동해로 바뀌고 처음 닿은 곳은 송정해수욕장. 여기까지가 해운대구 담당이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송정해수욕장에서 계속 북쪽으로 동해를 따라 올라가면 이번 여행의 목적지 기장이다. 기장은 1995년 부산으로 편입했다. 만약 동해안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온다면 가장 먼저 만나는 첫 관문이다. 울산과 부산의 가운데 즈음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기장에서 가장 여행객이 많은 곳은 아마도 용궁사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십이지석상이 일렬로 늘어선 숲길이 나타난다. 이어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108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 입구에서 둥근 배를 드러낸 득남불이 호쾌한 미소를 짓고 있다. 배를 만지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 덕분에 배 한 쪽만 까맣게 손때가 탔다.
용궁사를 나와 다시 북쪽으로 더 가면 연화리다. 날것 그대로의 어촌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화려한 해운대나 광안리와 달리 수수한 바닷가 풍경을 볼 수 있다. 해안을 따라 수십개의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있다. 어린 시절 간이 욕조로 쓰던 빨간 고무 대야에 낙지부터 성게, 멍게, 개불, 참소라, 갯고둥, 전복 등이 가득 들었다. 싱싱한 해산물에 절로 침이 고인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포장마차들이 제법 운치 있다. 부산 사람들이 조용히 한잔하고 싶을 때 찾는 연화리 해물촌은 워낙 구석구석 다니는 관광객들이 늘어난 덕분에 외지에서도 찾는 이들이 제법 있다.
| 따스한 봄바다에서 만선의 꿈을 실은 어선이 갈메기와 함께 출항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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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치 고깃배 대신 미역 따는 해녀를 만나다
| 기장 연화리 앞바다에서 물질을 마치고 나오고 있는 해녀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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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리에는 죽도라 불리는 섬이 있다. 기장에서 유일한 섬이다. 사실 섬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작은 편. 그래도 기장 팔경 중 2경으로 꽤 이름난 곳이다. 섬 중앙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외곽은 방문자를 완강히 거부하듯 철조망과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육지와 죽도를 잇는 연죽교 역시 섬 근처까지만 이어진다. 섬 전체가 사유지여서다. 사람들을 따라 다리를 건너자 갯바위에서 산책을 즐기는 연인들이 제법 보인다.
여기서 대변항도 지척이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멸치그물 터는 광경을 담고 싶어서다. 이미 봄빛으로 물든 항구와는 달리 거리는 한적했다. “아직 멜치 몬 잡는다. 물이 차가버서 깊은 바다로 드가뿟다.” 수온이 아직 낮은 탓에 멸치 떼가 깊은 바다로 들어가버렸다는 게다. 3월 초나 중순에는 조업이 가능하다고 어촌계 한 분이 말을 건넨다.
| 기장 연화리 앞바다에서 미역을 채취중인 어민이 직접 미역을 들어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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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미역 수확 중인 해녀는 제법 많다. 부산은 제주를 제외하고 해녀가 가장 많은 곳. 30개 어촌계에 등록된 해녀만 모두 953명(2016년 12월 말 기준)이다. 이 중 기장에만 601명의 해녀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출향 제주해녀이거나, 그들의 2세다. 또 이들에게서 물질을 배운 현지 해녀들이다. 이 마을에도 10여명의 해녀가 물질 중이다. 이들 중 가장 나이 어린 해녀인 박말애(62·사진) 씨는 다른 해녀와 달리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06년 ‘문예운동’ 봄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전문 글쟁이다. “지금 물에 들어가면 엄청 시렵심더. 물속도 사계절이 있심더. 겨울에는 오히려 따숩어예. 봄으로 가기 전 지금이 엄청시리 추버예. 바다도 새로운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통증을 견디는 중이라예.” 요즘은 ‘앙장구’라 부르는 말똥성게를 주로 잡는데,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한다.
◇ 윤선도가 반한 해안 절경을 따라 달리다
대변항에서 죽성 드림성당까지는 3km 남짓. TV드라마 ‘드림’을 찍기 위해 2009년 세운 드라마 세트장이다. 겉모습은 성당이지만, 사실 내부는 작은 전시실이다. 촬영이 끝난 후 철거할 예정이었지만,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아예 관광객을 위한 시설로 재정비했다. 드라마 세트장과 회색 벽돌, 흰색 벽체, 주황색 지붕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경관을 빚어낸다. 그렇게 죽성성당은 기장과 죽성리의 명물이 됐다.
죽성리는 작은 해변 마을이다. 원죽, 두호, 월전 3개의 자연부락을 합한 행정구역이지만, 꼬불꼬불 해안을 다 합해도 1.5km 남짓이다. 비록 작은 해변 마을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죽성성당 바로 옆 방파제 초입에 작은 산봉우리가 있는데, ‘황학대’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고산 윤선도가 신선이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중국 양쯔강의 ‘황학루’에서 빗대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윤선도는 1618년 6년간 기장에 유배됐는데, 매일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죽성리에는 명물이 또 하나 있다. 마을 중앙 둔덕에 고고하게 가지를 늘어뜨린 ‘죽성리 해송’이다. 품 넓은 소나무가 멀리서 보면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다섯 그루가 서로 의지하고 있다. 원래 여섯 그루였는데, 2003년 태풍 ‘매미’가 남해안을 휩쓸 때 한그루가 희생됐다. 이 아름드리 기둥 한가운데에 작은 당집이 끼워져 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주민들이 풍어제를 지내고, 나라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서낭당이다. 해송은 어디서 보든 당당하고 기품이 넘쳐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써 부족함이 없다.
죽성리 해송에서 뒤쪽 언덕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죽성리 왜성‘이다. 이 성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듬해인 1593년 왜군 장수인 구로다가 축성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 왜군이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공격에 맞서고 남해안에 장기간 주둔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전란이 끝날 무렵에는 퇴각하는 왜군이 집결한 곳이기도 하다.
| 죽성리왜성 정상에서 본 두호마을과 죽성리해송, 죽성드림성당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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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먹을곳= 기장에서 맛집을 원하면 기장시장에서 토속적인 음식을 먹거나 죽성리, 대변항, 연화리 등 횟집촌에서 대게 등 싱싱한 해물을 음미하는 것이 좋다. 기장은 미역,다시마,멸치로 유명하다. 멸치잡이 철에는 멸치회나 구이, 정식 등을 많이 찾는다. 연화리의 ‘손큰할매’는 해녀가 직접 채취한 전복과 해물 등으로 만든 전복죽과 해물모둠회가 유명하다. ‘오가다짬뽕’의 해물짬뽕도 별미다.
△잠잘곳= 기장에는 펜션 등 숙소가 제법 많아 선택의 폭이 넓다. 평소 숙소에 신경을 많이 쓴다면 오시리아 관광단지 내 힐튼호텔·아난티코브가 있다. 해운대에도 숙소가 많다. 최근 문을 연 페어필드호텔은 가성비가 좋은 곳. 만약 아이와 함께라면 해운대 터줏대감인 ‘파라다이스호텔부산’도 있다. 교육놀이 전문가이자 호텔 직원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며 부모들에게 자유시간을 보장해주는 키즈 케어 서비스를 새로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