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일제의 흔적]① 일제가 남긴 적산가옥, 왜 보존하나
by이정현 기자
2019.03.05 05:57:10
손혜원 논란 후 뜨거운 감자로
인적청산 부재로 인한 논쟁 지적
일제 침략 증거, 감추지 말고 교훈 삼아야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한반도 수탈의 상징을 왜 보존하나.” “적산가옥을 살릴 예산이 웬말이냐.” “귀신이 나올 듯한 일제의 공간이다.”
지난달 손혜원 의원의 목포 적산가옥 매입과 관련한 소식이 전해진 후 반응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 자주 독립을 향한 선조들의 열망을 재확인 하는 해에 ‘적산가옥’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문화재청이 목포와 군산, 영주 등에 근대역사문화거리를 조성하겠다고 한 계획이 바람을 일으킨 셈이다.일제의 잔재를 보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역사적으로 지켜야할 우리의 역사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침략의 상징’ 없애는 게 답?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적산’은 영토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 또는 적국인의 재산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해방 후 일본인이 남겨놓고 간 집이나 건물 등을 지칭한다. 일각에서는 용어를 ‘귀속재산’(歸屬財産)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해방 후 미군정이 미군정청령에 따라 특별관리를 했으며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적산가옥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한국전쟁과 재개발 등으로 빠르게 소실 중이다.
적산가옥을 보는 일반적인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일제가 남긴 한반도 수탈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군산과 목포에 유난히 일제강점기 때 건물이 많은 건 당시 호남에서 생산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적산가옥을 보존해야 한다고 본다. 일제가 남긴 침략의 증거이며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치독일이 남긴 흔적을 오히려 되살린 프랑스와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유대인들이 사례다.
논란의 시작인 목포·군산·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역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살았던 공간이 아니라 한국근현대사를 상징하기에 문화재로 등록 고시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당시에 있었던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회사 건물과 더불어 대한제국 당시 개항한 근대항만의 역사와 근대산업화시기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와 현재로 이어지는 100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인적청산 부재의 후유증… 교훈 삼아야
적산가옥은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완전철거한 조선총독부청사나 현재 외형만 보존한 옛 서울시청사(현 서울도서관)도 대표적인 적산이다. 일본과 가까운 부산에는 과거 일본식 가옥이 1만4000채가 넘는다고 알려졌다.
최근에는 문화공간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전시공간이나 게스트하우스, 카페 등으로 개조해 활용하는 경우다. 일본인이 지은 건물인 만큼 ‘이색적이다’라는 평가 속에 젊은 층에 인기다. 전북 군산에 있는 대표적인 적산가옥인 ‘히로쓰 가옥’은 영화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촬영지로 쓰이기도 했다. 비판 속에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는 아이러니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 및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 위원은 “적산가옥이 문화재냐 아니냐는 건 해방 후 친일 인적청산이 부재했던 우리나라에서만 불거지는 논쟁”이라며 “일제가 남긴 침략의 증거를 보존해 다시는 침략당하는 역사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손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적산가옥이 문화재로 가치있는 것은 아니며 역사나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건축물만이 자격이 있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문화유산의 가치는 찬란함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세대에 어떤 교훈을 주느냐에 달렸다”며 잘못된 역사관을 자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역사만 부각하고 부끄럽고 창피한 역사는 지우려는 건 잘못됐다는 것이다. 오히려 “물적청산을 강요해 침략의 증거를 일부러 없애 일제에 당한 설움을 잊자고 주장하는 이들의 저의를 의심해보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