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봉의 중국 비즈니스 도전기] 9회 : 화교를 알아야 중국을 안다
by이민주 기자
2017.03.06 06:00:00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 가지 키워드 중 하나가 화교(華僑)다. 해외에 살고 있는 중국인!
무려 5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화교의 대부분은 동남아시아에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화교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대표적인 나라다. 현재 2만 명 남짓하는 화교는 산동성 출신이 대부분. 1898년 의화단의 북청사변으로 산동성 일대가 전란에 휩싸이자 날씨 좋은 날 새벽이면 닭소리가 들린다는 인천을 통해 우리나라로 피난 온 중국인들이다.
이들 화교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돈벌이의 달인들이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살든지 먹고 사는 문제를 재빨리 해결한다. 그것도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말이다. 오사카 발명품 ‘짬뽕’, 인천의 ‘춘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끼리 번 돈을 모아 모아 유통과 금융 등 사업을 멋지게 벌여 몸집을 키운 후 독점적인 제조업에 진출, 걸출한 화상(華商)이 된다.
두 번째는 중화(中華)사상을 구심점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든 후 중국의 고향과 연대 관계를 구축한다. 중국식당 두 곳만 있으면 자연스레 학교(?)가 생긴다. 주말마다 한집에 자녀들을 모아 놓고 중국어만 사용하는 교육 시간을 갖는다. 교사는 아버지들 중 한사람이다.
셋째는 엄청난 귀소본능, 그것도 금의환향(錦衣還鄕)을 인생의 목표로 한다. 내가 아는 화교의 아버지인 중국식당 주인도 죽기 전에 산동성 시골 고향 마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를 세우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자랑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돈을 모은다.
화교들의 문제점도 적지 않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이 마작(도박)이다. 지구촌 도박 중 가장 재미있다고 하는 게임이다. 명절 때 보통은 2박3일, 길게는 5박6일간 벌인다. 게임이 끝나면 중국집 주인이 바뀌기도 하고 심할 경우 딸이 도박 빚 때문에 빚쟁이 에게 팔려 가기도 한 경우도 왕왕 있었다고 전해진다. 화교 문제는 나중에 다시 짚기로 하자.
1994년 겨울 한식당 인수 문제로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나는 본사 후배 회장이 지시한 주상복합빌딩 건축 사업에 전력을 기울였다. 한국 모 언론사 베이징 특파원 친구가 소개해준 북경대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한국인 L씨. 그가 주선한 베이징시 외곽 사거리 모서리 땅에 주상복합빌딩을 지어 분양하는 사업이다. 관할 지자체 장과 합작 사업 관련 국장급 공무원들과 수시로 만나 모든 일이 순탄하게 진행됐다.
나와 친구 특파원, 북경대 예비 박사 L씨 등 3명은 사업부지 인근 배나무 밭에서 삼국지를 흉내 내어 도원결의 ‘형제 의식’까지 거행했다. 그리고 각자의 부인들까지 우리 6명은 그야말로 한 식구가 되었다. 본사 후배 회장과 임직원들도 현장까지 날아와 너무 흡족해 했다. 나에 대한 대우도 한 층 좋아졌다. 중국어를 전공한 여직원까지 뽑았다고 했다. 그 여직원은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베이징 지사에 파견될 예정이라며 인사차 베이징에 다녀가기도 했다.
한중 합작 사업이어서 중국 관계 당국의 인가만 나오면 만사 오케이였다. 중국은 땅을 대고 건설비는 한국이 투자해 건설, 분양한 후 수익을 계약한 대로 나누는 합작사업. 지하 3층, 지상 15층 주상복합빌딩을 지을 꿈에 부풀어 도원결의를 맺은 3명의 의형제가 거의 매일 만나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중국 공무원들도 나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해 멋진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중국인이 자신의 집에 외국인을 초대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위에 서면 보고해야 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던 어느 날 통역을 하면서 북경지사 부지사장을 맡고 있던 L씨가 나간지 3시간도 안됐는데 헐레벌떡 숨가쁘게 사무실에 들어 왔다. 아뿔사 이런 일이! 우리가 합작 개발하기로 한 토지는 작년에 이미 캐나다 화교와 계약을 체결해 북경시에 인가 신청을 한 토지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럴 수가? 최종 확인하는데 한달이 걸렸다.
‘1차 투자금이 한국에서 들어오면 한국과의 계약 조건을 캐나다 화교에게 통지한다. 그 화교가 한국과의 계약 내용보다 좋은 조건으로 사업을 계속 진행하겠다고 하면 우리와의 계약은 무효가 된다.’
다시 한번 억장이 무너졌다. 아 중국!
<다음회 계속> 중국 전문가 전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