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눈] 아바나 한류 열풍은 기회다

by김혜미 기자
2015.12.09 05:01:01

[뉴욕= 이데일리 김혜미 특파원]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구준표의 왕팬이에요. 혹시 저와 다음번에 만나게 되면 구준표 역할을 맡은 이민호 사진을 주셔야 합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올해 마지막 휴가지로 선택한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만난 한 여행사 직원은 기자에게 수줍어하며 농담을 던졌다. 그의 수다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왔다”고 답한 직후부터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쿠바의 한류 열풍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앞서 아바나 도착 첫날 혁명광장에서 만난 한 현지인은 기자를 보더니 크게 반가워하며 다가섰다. 그는 통역자와 얘기를 나눈 후 기자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쿠바는 드라마 등 한국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스포츠 열기가 달아올라 최근 한국 야구대표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지난달 2015 서울 슈퍼시리즈에서 쿠바를 꺾은 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준결승전에서 미국마저 꺾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호감도는 더욱 높아졌다. 쿠바 현지에서는 미국에 대한 반감과 동경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남미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 가전제품에 대한 인기도 대단히 높았다. 기자는 쿠바에서 정부 허가를 받은 일반 가정집인 카사(casa)에 머물렀다. 기자가 어느 날 아침식사를 하러 1층에 내려가자 집주인이 흥분하며 뒤뜰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LG전자(066570) 세탁기가 놓여있었고 그는 서툰 영어로 힘들게 구입했다며 지금까지는 금성사(Goldstar·LG전자의 옛이름) 제품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가지 더 생각난 듯 “우리 집 에어컨도 한국산 제품”이라며 2층을 가리켰는데 에어컨은 대우 일렉트로닉스 제품이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의 맹추격으로 한국 기업들이 위기를 느끼는 상황에서 쿠바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쿠바’ 하면 떠오르는 낡은 건물과 형형색색의 올드카 행렬은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쿠바의 현실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주택 부족과 식량 위기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자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2011년 제1서기직에 취임한 뒤 각종 개혁조치를 발표하고 외국인 투자를 장려했다. 쿠바는 외국자본이 쿠바내 기업을 100% 소유할 수 있도록 해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에 나서고 있다. 또한 사업승인 절차를 이전보다 간소화하고 조세감면 혜택도 제공한다.

미국이 쿠바와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한 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전세계 국가들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월 쿠바를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뒤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열었으며 단계적인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 8월 문을 연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은 약 10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아메리칸 에어라인(AA)은 현재 쿠바 직항편을 운항한다. 기자 역시 마이애미에서 AA 항공편을 이용했는데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아바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쿠바에서 미국 기업이 제공하는 금융 및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멀지 않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EU는 고위급 인사 교류를 활발히 하는 한편 일부 민간기업들의 투자 소식도 들려온다. 일본 기업들은 올초 쿠바 투자 세미나를 열었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마지막으로 남은 쿠바의 미수교 국가다. 하지만 쿠바에 부는 한류 열풍은 결코 놓쳐선 안 될 좋은 기회다. 11월 30일 현대종합상사는 2000년대 초반 대우 인터내셔널에 이어 두 번째로 지사 공식 설립허가를 받았다. 쿠바 정부가 한국 기업에 기회를 열어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쿠바 진출에 속도를 낼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