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인경 기자
2013.08.07 07:39:23
증권가, 93년 금융실명제 발표 이튿날 시가총액 4조원 증발
반등장 노린 자금에 정부 정책 소문 돌며 상승세도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군사 작전처럼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금융시장에도 엄청난 충격을 불러 왔다. 어쩔 줄 몰라하는 불안심리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다만 투자자들이 적응하는데 큰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금융실명제 발표 다음날인 1993년 8월 13일 증권거래소는 제시간에 열리지 못했다. 워낙 삽시간에 발표가 이뤄지다 보니 투자자들이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오후 2시10분 드디어 장이 열렸다. 하지만 충격을 완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실상 시장이 마비됐다.
이날 주가지수는 전날 752.94에서 693.57로 7.9% 폭락했다. 92조4860억원이었던 시가총액은 하룻새 88조3540억원으로 4조원이 날아갔다. 평소 하루 1500만주에서 2000만주씩 거래되던 시장이었지만 13일 거래량은 135만주에 불가했다. 10분의 1수준이었다.
하한가 매도잔량만 9930만주에 이르렀으니 개장 37년 만에 나타난 최대의 폭락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하루가 지난 14일에도 포스코(005490), 한국전력(015760), 당시 5대 은행으로 분류되던 한일은행, 제일은행 등이 그나마 하한가를 벗어났다.
당시 여의도 입성 4년차였던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당시 모든 종목이 깡그리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장이 열리자마자 거래할 수 있는 종목도 몇 개 없었다”며 그는 “지하자금이 한번에 빠져 나와야 한다니까 충격과 공포는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모 증권사 국제조사부 신입이었던 우영무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금융실명제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새로운 제도 도입에 주가는 물론 모든 금융업계 사람들이 혼란을 겪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반의 혼란은 비교적 빨리 수습됐다.
금융실명제 이후 첫 휴일을 보낸 16일(15일은 광복절 휴일이었다) 증시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게다가 증시를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에서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다는 소문도 돌자 발을 뺐던 투자자들도 시장으로 서둘러 돌아 왔다. 정부가 외국인 투자한도와 신용융자공여한도를 확대하고 증권사의 외환 차입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18일에 급등세가 연출됐다. 이날 지수는 전일보다 24.24포인트(3.52%)나 올라 713.18을 기록했다. 그리고 8월말 증시는 완전히 안정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