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는 늘 ‘북적북적’..그런데 왜 미분양날까

by박종오 기자
2013.05.29 08:04:36

견본주택 내방객 수는 건설사 '추정치'
이벤트중심 운영으로 방문객≠예비청약자
주택시장 침체에 '내방객數' 자체는 중요성↑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경기도의 한 택지개발지구에서 이달 중순 분양한 A아파트. 지난 10일 개관한 이 아파트의 견본주택에는 개장 첫날에만 5800명이 몰리는 등 주말까지 방문객 총 2만 500여명이 다녀갔다. 업체 기대가 컸지만 전용면적 85㎡이하 1061가구의 일반 청약접수를 실시해 보니 정작 212가구가 미달됐다.

지난 3월 초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서 청약을 진행했던 B아파트도 쓴 맛을 톡톡히 봤다. 중대형 아파트 1410가구를 공급했지만 591가구가 대거 청약 미달된 것이다. 견본주택 문을 연지 나흘 만에 3만 8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는 업체 설명과는 딴판이었다.

▲최근 경기도에서 문을 연 한 모델하우스 내부 모습.
최근 분양시장의 열기는 모델하우스에서만 뜨겁다. 각 업체 자료를 보면 전국 각지의 모델하우스는 개관 뒤 사흘 만에 방문객 1만~2만명 이상이 다녀갔다는 곳이 대부분이다. 집계가 주로 주말 동안 이뤄진다 해도 내방객은 하루 평균 수천명에 달한다. 주택시장이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는 업계 종사자들의 하소연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물론 북적대는 인파가 반드시 청약 흥행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최근에는 주변에서 반대 사례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지난 3월 실시한 경기도 화성의 동탄2신도시 3차 합동분양이 대표적이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6개 건설사가 참여한 1·2순위 청약결과 33개 주택형 중 청약을 마감한 건 6개 타입 뿐이었다. 견본주택 개관 뒤 예비청약자가 하루 평균 1만명 이상씩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업체 발표가 궁색해지는 결과였다.

모델하우스는 늘 들썩이지만 정작 분양실적은 기대를 밑도는 경우가 적잖다. 이른바 ‘풍요 속 빈곤’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내방객 수를 따져 분양 흥행과 청약 여부를 점쳐보려는 예비수요자들로선 어리둥절한 노릇이다.

◇모델하우스 방문객 수는 건설사 ‘추정치’

각 건설사가 분양흥행을 위해 숫자를 부풀리고 있진 않을까. 업계에 따르면 분양건설사가 발표하는 내방객 수는 대부분 실제에 근사한 ‘추정치’이다. 먼저 견본주택 입구를 지키는 직원이 안내데스크 앞에서 방문객이 입장할 때마다 실제로 수를 센다. 손바닥보다 작은 계수(計數)기가 이용돼 일반인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

내방객 수는 통상 견본주택 개관일부터 청약일 전까지 단위시간당으로 집계된다. 결과는 분양업체가 계량화해 내부 자료로 사용하는 동시에 홍보 목적으로 외부에도 알린다. 직접 세는 것 외에 다른 방법도 동원된다. 방문객이 기념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설문지를 집계하는 등 업체별로 수단이 다양하다는 게 분양업계 종사자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집계되다 보니 업체 설명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다 홍보 차원에서 숫자를 불릴 수도 있어서다. 또 대다수 업체가 일요일 오전 홍보자료를 배포하는 탓에 일요일 방문객 수는 대략적인 추정치가 적용된다.

D건설사 관계자는 “견본주택은 금요일 문을 열어 주말까지의 내방객 수를 집계하지만 일요일 오전에 자료를 내다보니 이날은 방문객 수를 추정해야 한다”며 “보통 일요일도 토요일만큼은 올거라고 보고 수를 따진다”고 말했다.

▲한 대형건설사가 올해 초 서울에 위치한 자사의 오피스텔 모델하우스에서 대입 설명회를 개최한 모습. 최근엔 이같은 모델하우스 내 행사가 일반화됐다.
◇‘방문객≠예비청약자’..가족·주민이 찾는 모델하우스

이것만으로 내방객과 청약실적 사이 불일치를 설명하긴 어렵다. 방문자 수가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집계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분양업계 관계자들은 이보다 청약률이 떨어지는 주된 원인으로 모델하우스의 성격이 크게 달라진 점을 꼽는다. 주택시장 불황으로 과거의 투자수요가 빠져나간 데다 잦은 이벤트 등으로 인해 견본주택 자체가 주택 소비보다는 일종의 여가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S건설 관계자는 “시장 여건이 좋지 않아 마케팅 측면에서 일단 사람을 모이기 위해 행사를 많이 하게 되면서 예전에 비해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분양업체가 이벤트와 행사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견본주택 방문자=예비청약자’라는 옛 공식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대림산업의 유제규 분양촉진팀 부장은 “예전에는 분양을 하면 누가 오든 집이 잘 팔리니 홍보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델하우스 오픈 3개월 전부터 마케팅 전략을 짠다”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 20년여 간 몸담은 한 관계자는 “분양시장 활황이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모델하우스만 열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방문객 수가 별 의미 없었다”면서 “지금은 이벤트를 해서라도 사람을 모으는 게 우선이 되다보니 내방객 숫자가 갖는 의미도 과거보다 중요해져 주요 홍보대상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