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12.20 08:17:55
''반값 아파트 원조'' 싱가포르 르포 [下]값이냐, 質이냐
소비자 입맛 맞춰 외관·품질 고급화 재정적자 눈덩이… 민영은 투기열풍
[조선일보 제공] 싱가포르 사람들은 1990년대 이전에 지어진 공영아파트를 ‘비둘기집’이라고 부른다. 직사각형 성냥갑 모양의 획일화된 외형을 빗댄 표현이다.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HDB(주택관리청·한국의 주택공사에 해당)가 내부 마감재를 최소화하고, 판박이식으로 대량 찍어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볼품 는 ‘반값’ 공영아파트를 외면하고 값이 몇 배 비싼 민영아파트를 선호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 공영아파트의 미분양사태도 속출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HDB도 아파트 품질과 외관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부동산중개업체 ERA의 아이빈 오 전무는 “HDB가 고객 입맛에 맞춘 고급형 공영아파트를 개발하고, 오래된 공영아파트 업그레이드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공영아파트의 인기는 좋아졌지만 HDB의 적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가격은 민영아파트의 ‘반값 이하’로 유지하면서 고급화하려니 비용이 커졌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HDB 관계자는 “국민들의 고급화 요구가 커지면서 HDB의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시내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한국의 분당 같은 신도시에 해당하는 푼골과 센캉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19만 가구가 모여 있는 대규모 공영아파트 단지다. 그런데 아파트마다 특색 있게 외형이 설계되어 있어 언뜻 보기에 민영 고급 아파트와 구분이 잘 안 된다. 아파트 사이사이에 야자수 등 나무들이 심어졌고, 야외 주차장 옥상에는 바비큐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메이뱅크의 보험설계사 에드먼드 찬 카이 렁(32)씨는 2004년 7월 푼골 단지의 33평형 공영아파트를 분양받아 신혼 살림을 차렸다. 분양가격은 1억3020만원. 평당 395만원이다.
렁씨 아파트의 거실은 통유리로 꾸며져 바깥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실 바닥과 부엌에도 고급 타일이 깔려 있다. 콘크리트로 마감한 옛날식 공영아파트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렁씨는 “그래도 모자라 1680만원을 들여 카페 분위기로 내부 인테리어를 완전히 뜯어 고쳤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시내 중심지에서 한 블록 떨어진 탄종 파가르 지역. 벌써 10층까지 골조가 올라와 있는 공영아파트(50층짜리 6개동)는 국내외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건축가가 디자인을 맡았다. 또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고층 구름다리를 설치하는 등 도심지역의 스카이 라인과 어울리도록 설계되는 파격을 연출했다.
▲ 싱가포르 신도시인 푼골 지역의 신형 공영아파트 단지. 옛날식 공영아파트와 달리 디자인에도 신경쓰고, 주차장 옥상에 놀이시설과 바비큐 파티 등을 열 수 있는 편의시설을 갖추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