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화물연대 파업이 남긴 숙제

by최훈길 기자
2022.12.23 06:15:00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화물연대 파업이 일단락됐다.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화물연대가 백기를 들고 항복을 한 모양새다. 반대로 정부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처럼 의기양양한 기세다. 이전 정부와 다르게 법과 원칙을 사수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고 자화자찬하기 바쁘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아니 쓰다. 국민을 이겼다고, 그것도 먹고 살기 힘든 화물차 운전자들을 상대로 이겼다고 좋아할 일인가? 엄밀히 얘기하면 사실 이긴 것도 아니다. 화물연대 파업의 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화물연대 파업 사태를 불러온 근원적 책임이 정부의 정책 실패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을 가져온 직접적 발단은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안전운임제다. 하지만 상황을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안전운임제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개인사업자인 화물차주에게 불리한 화물운송업계 운영구조가 근본 원인이다.

개인사업자 입장인 화물차주는 화주의 운송 관련 정보로부터 소외돼 있다. 관련 정보는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운송주선사에 몰린다. 그래서 개인 화물차주의 운송 수입은 주선료와 지입료 등으로 여기저기 뜯겨 나간다. 최종적으로 화물차주에게 돌아가는 운임 수입은 그러지 않아도 높지 않은 운임에서 더욱 줄어든다.

화물연대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9일까지 ‘안전운임 3년 연장안 입법화 및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집단운송거부(파업)에 나섰다. 안전운임제는 과로과속 등을 막기 위해 화물 차주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고 그보다 적은 돈을 지불하는 화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문재인정부 때인 2020년부터 3년 한시로 도입됐고, 이달 중에 법 개정이 안 되면 자동으로 폐지된다. (사진=연합뉴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업에 존재하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내버려둔 채 일부 품목에 한해 그것도 한시적으로 운임을 올려준다는 제도다. 한마디로 화물차주의 불만과 저항을 당장에 모면해보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안전운임제는 애초부터 화물운송업계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이 아니라 임시방편적인 ‘대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안전운임제가 미봉책이었다 해도 잠시 벌어둔 시간 동안 화물운송업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나름의 의미 있는 대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나 정치권 누구도 화물운송업계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



안전운임제를 도입한 이전 정부도 문제지만, 올해 6월 안전운임제를 두고 벌어진 화물연대의 1차 파업 경고에도 적극적인 문제 해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지금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화물연대 파업의 이면에는 부실한 정부 정책과 대응 미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화물연대 역시 화물운송업계 문제 해결을 위한 타겟을 잘못 잡았다. 화물차주의 근본적인 영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안전운임제를 타겟으로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 불리한 화물운송업의 불합리한 운영구조 개선을 핵심 타겟으로 잡아야 한다.

업계와 정부 모두 이번 사태를 화물운송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손질하는 계기로 삼아야 파업으로 경제 전체가 치른 비용을 일부나마 상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화물운송업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는 플랫폼경제 문제와 맞닿아 있다. 플랫폼경제가 심화할수록 운송주선사의 화물운송 플랫폼 장악력은 더 강해질 테고 운송수수료 결정권이 더 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달플랫폼 등 여타 플랫폼 활용 분야에서도 그렇듯이 플랫폼경제는 개인사업자들에게 위기이자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플랫폼의 활용 여하에 따라 이전에는 접근이 어려웠던 새로운 고객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따라서 화물차주들은 플랫폼 경제에서 생존할 수 있는 디지털 활용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플랫폼이 화물차주들에게 유리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플랫폼 정책 설계를 해야 한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둘만 하다. 하지만 당장의 문제를 억지로 물리력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문제가 생긴 근본 원인을 찾아내 그것을 고치는 것이 상책이다. 이번에는 상책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