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가족력 희귀난치질환 '아밀로이드증'치료 가능
by이순용 기자
2022.01.08 08:25:55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일곱 형제 중 위에 3명의 형이 모두 50대 후반에 급사를 한 가족력이 있는 63세 환자는 숨이 차고, 다리가 붓기 시작하여 타 병원을 방문했다. 숨이 차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심장에 이상이 있더라도 큰 문제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입원 기간 중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하고, 일어서기만 하면 매우 어지러운 증상이 생겼다.
손, 발에 힘이 없고, 저린 증상과 함께 식사만 해도 소화가 안되고, 불편감이 지속되었다. 환자는 심장초음파 상 심장 기능은 10%도 채 되지 않았으며, 심장을 먹여 살
리는 혈관들인 관상동맥은 정상이었다. 타 병원에서는 병명은 심부전이지만 원인은 명확하지 않고, 지금 기능으로는 6개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으며, 심장 이식이 필요할 수 있어 본원으로 전원을 진행했다.
환자는 아직 60대 밖에 되지 않았고, 고혈압, 당뇨 등의 기저질환도 없었는데 너무 암울하다. 생각해 보니 형제들 중 3명이 급사하였으니 자신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더 심해진다. 많은 두려움과 걱정이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에 가득하다. 심장초음파와 심전도를 보았을 때, 일반적인 확장성 심근병증에 의한 심부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심장의 벽이 얇지 않고, 오히려 무언가 심장에 침착을 한 소견이었다. 심한 어지러움과 양 사지의 감각 둔화, 신경병증이 동반되어 있었고, 혀가 다소 두꺼워 보였다. 확장성 심근병증에 의한 심부전보다는 아밀로이드증에 의한 심부전으로 생각되어 이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였다. 두려워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최근에는 많은 약물들이 개발되고 있으니 우선 정확한 진단을 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시도록 격려를 해드렸다.
아밀로이드증은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골수 혹은 간에서부터 생성돼 “아밀로이드”라는 일종의 섬유질이 생기고, 이 아밀로이드 섬유질이 전신 장기에 침착되면서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질환이다. 가장 흔한 타입으로는 AL 아밀로이드증이 있으며, 골수의 형질 세포에서 만들어진 비정상적인 항체 단백질이 다양한 조직(특히, 심장, 신장, 말초 및 자율 신경계) 등에 침착하여 해당 장기에 기능 부전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으며, 병기에 따라 예후가 나쁜 경우도 있다. 유전성 혹은 가족성 아밀로이드증은 트랜스싸이레틴(TTR) 단백질 유전자 이상이 가장 흔한 원인인데, 간에서 돌연변이 TTR 단백질이 합성되어 심장 혹은 신경이나 전신 장기에 침착되며,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이 된다. 이에 따라 부모가 환자일 경우, 아이는 50%의 확률로 유전이 될 수 있다. 이외에 노인성 아밀로이드증이 있고, 이 경우에는 유전성과 같은 종류의 단백질인 트랜스싸이레틴(TTR) 단백질이 조직에 침착 되는 타입이지만 돌연변이 TTR 단백질이 아닌 정상 TTR 단백질이 심장에 쌓이게 되어 병의 예후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환자는 AL 타입은 다행히 아니었지만 유전자 검사와 심근조직 검사를 시행하였을 때, TTR 아밀로이드증에 의한 심근병증이었고, TTR 유전자 변이가 있는 유전형 아밀로이드증이었다. 아밀로이드증은 각각의 타입 별로 치료가 좀 다른데 AL 타입은 항암치료가 주되지만 TTR 아밀로이드증은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TTR 단백질을 안정화 시키는 약물을 사용하면 호전될 수 있다. 환자는 유전형 TTR 아밀로이드증으로 진단되었고, 다행히 2018년 10월, 환자가 병을 진단 받을 당시 TTR 단백질을 안정화 시키는 약물인 타파미디스가 국내에서 신경병증 환자들에게 보험 적용이 되면서 환자에게 바로 사용을 시작했다.
환자가 처음 진단을 받은 당시는 2018년이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심장 침범만 있을 경우에는 아직 약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지만 환자의 경우에는 신경과 심장에 모두 침범이 된 TTR 아밀로이드증이어서 이제 막 한국에 도입한 신약을 보험으로 처방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 알에 20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신약인지라 보험이 되지 않는다면 일반인으로서는 엄두도 나지 않는 약제다. 환자는 정확한 진단과 신약의 도움으로 이후 증상은 크게 호전되어 외래를 다니고 있으며, 내가 연수를 간 동안에도 입·퇴원 없이 외래를 잘 다니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에 도입된 약제는 약의 용량이 적고, 심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은 편이라 높은 용량의 약제 도입과 보험이 절실한데, 아직까지는 국내 허가가 되지 않은 상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높은 용량의 타파미디스가 많은 임상 시험을 거쳐 효과가 입증되었고, 특히나 심장질환자들에게 효과가 있고, 생존율을 높인다고 나타났지만 보험 약가의 문제로 국내에서는 쓰기 어려운 실정이다.
내가 연수를 다녀온 후, 환자의 아드님도 같은 유전자가 있는 TTR 아밀로이드증 환자로 진단이 되었으며, 동생분도 심장과 신경을 침범한 TTR 아밀로이드증이 진단되어 치료받고 있다. 다행히 동생의 경우는 조금 빨리 내원하여 부정맥을 확인하고, 약물 복용을 시작하여 급사를 방지할 수 있었다.
환자가 처음 진단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최근에는 증상이 점차 나빠지게 되어 심장 이식을 고려하고 있다. 환자가 워낙 초기에 병이 진행된 상태에서 내원했기 때문에 TTR 침착을 막는 약제를 사용하였지만, 3년 이상 견딜 수 없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초기에 말기 심부전이었던 것을 고려했을 때, 3년 동안 입·퇴원 없이 잘 지내신 것도 다 신약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심장 이식 이후에도 TTR 침착을 지속적으로 막아주어야 심장 이식 이후에도 재발 없이 살아갈 수 있어 높은 용량의 타파미디스가 필요한 실정이다. 약물은 있지만 현재 국내에서의 도입과 함께 보험이라는 큰 장벽이 있는 상태로 희귀질환에 대해 지속적인 치료 기반을 마련하는데 정부 지원과 사회구성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아울러 의료진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뿐만 아니라 환자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운동과 생활요법도 잘 지킬 수 있도록 격려하고 끌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에 비해 희귀난치질환 치료 약물은 점차 발전하고 있으며, 다학제 연구 네트워크를 통해 긴밀한 협의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졌다. 아울러 전 세계적인 학술회의들도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이루어지고,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에 대한 고민도 많은 대가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직은 한국이 유전형 희귀질환들에 대해 전 국민의 관심이 적고, 국가 차원의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다. 유전성 아밀로이드증은 부모와 자식 간 대물림되는 유전질환으로 환자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가족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도 매우 크고, 희귀질환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적절한 대안이 모색돼야 한다. 아무쪼록 이러한 희귀질환 환자들이 혼자라는 생각을 갖지 않고, 많은 의료진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치료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