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솔숲서 세상사 떨쳐내고, 1500년전 시간을 거슬러 가다
by강경록 기자
2021.07.09 06:00:00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 북지장사 소나무숲길
대구 팔공산 올레 8코스 중 1코스
팔공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로 꼽혀
|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 북지장사 가는길은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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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영남의 명산 ‘팔공산’. 대구·군위·칠곡·영천 등 4개의 시·군에 걸쳐 있는 큰 산이다. 그 크기만큼이나 많은 볼거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0개에 이르는 등산로는 제 나름의 멋을 부린 숲길을 품고 있다. 이뿐이랴.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비롯해 영조의 탄생 설화가 깃든 ‘파계사’, 화려한 오동나무의 절이라고 불리는 ‘동화사’ 등 수많은 사찰도 품고 있다. 특히 초여름 팔공산의 가장 큰 매력은 초록의 숲길로, 서늘한 숲그늘에서는 피서의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다. 살짝 비라도 내려주면 그야말로 오감으로 숲의 매력을 실감할 수 있다. 시각과 후각은 물론, 청각과 촉각이 숲길 여행을 보장해 준다. 코끝으로는 청신한 숲내음이, 발끝으로는 푹신한 흙길을 밟는 촉각이 전해져 온다. 이맘때만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대구에도 올레길이 있다. 2008년 대구올레 1코스를 시작으로 대구올레 2코스와 팔공산 올레 8코스까지 모두 10개의 올레길이 나 있다. 산과 들, 계곡과 숲 그리고 마을 길을 아우르는 길에는 팔공산의 눈부신 자연과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가득하다. 팔공산은 1000여 년 전 왕건과 견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공산 동수(현 팔공산 지현동)에서 벌어진 일명 ‘동수전투’에서 왕건은 크게 패해 오른팔과 같은 신숭겸을 잃고 멀리 안심(安心)까지 달아났다. 신숭겸은 왕건 옷을 입고 후백제 군사를 유인해 주군을 살리고 전사했다. 8명의 장수가 전사했다고 해서 공산이 팔공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를 비롯해 팔공산 자락에는 당시 전투에서 유래한 지명이 곳곳에 있다.
팔공산 올레 1코스는 ‘북지장사 가는 길’로 불린다. 팔공산의 매력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숲길이다. 진입로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시인 특유의 육필로 아로새겨진 한국현대시 육필공원을 만날 수 있다. 조금 지나면 왼쪽에 유기장 이봉주 선생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는 방짜유기박물관이 나온다.
| 대구 팔공산 북지장사 입구에도 소나무숲이 울창하게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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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팔공산에 자리한 북지장사 가는길은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로 많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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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걸어서 들어가는 게 좋다. 북지장사 가는 길의 하이라이트인 소나무숲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북지장사 표석을 지나 걷다 보면 키가 껑충한 소나무들이 무리 지어 반긴다. 솔숲 구간은 한참 동안 이어지는데, 이 솔숲길이 1코스의 백미다. 들머리부터 1.3㎞ 이어져 있다. 팔공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인 이곳의 여름 숲길에는 이미 여름 향기로 가득하다. 푹신한 흙길은 어른 서너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고 평탄하다. 곳곳에 쉼터와 벤치가 있어 쉬어 가기도 좋다. 곧게 뻗은 소나무 사이로 걷다 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복잡한 세상사를 말끔히 떨쳐버리고 편히 쉬며 걷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소나무 사이로 좁은 흙길을 밟고 걷다 보면 소나무 향이 폴폴 풍겨온다. 발끝부터 코끝까지 전해지는 계절의 촉각이다. 그야말로 복잡한 일상이 내리누르는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듯하다. 호젓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그 길 끝에 북지장사가 자리하고 있다. 소박한 절집이지만, 그리 보여도 대구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받아들인 곳이다. 남지장사와 더불어 동화사의 말사를 이루고 있다. 과거에는 동화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큰 절이었다. 옛 영화는 사라졌지만, 절집 곳곳에 당시의 위세를 짐작케 하는 문화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웅전(보물 제805호)은 말사답지 않게 웅장하고, 그 양쪽에 한기씩 자리한 삼층석탑(대구유형문화재 제6호)은 어떤 탑보다도 우아하다. 또 석조지장보살좌상(대구유형문화재 제15호)을 비롯해 지장보살 탱화와 지장사유공인영세불망비, 석재유물까지. 절집 자체가 작은 박물관이다.
어스름이 내릴 무렵, 팔공산에서 나와 동구의 불로동 고분군으로 향한다. 대구 사람들도 잘 모르는 숨겨진 여행지. 북적북적한 대구에서 비교적 한적하고 여유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고분군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에는 5세기경 신라 시대에 조성한 무덤들이 모여 있다. 크고 작은 고분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최근 이곳을 찾는 발길도 부쩍 늘었다. 특히 불로동이라는 이름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역사도 깃들어 있다. 공산전투에서 패해 도주하던 왕건은 이 마을에 이르렀다. 당시 마을에는 어른들은 다 죽고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이후 어른들이 없는 곳이라는 뜻에서 ‘불로동’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제 고분군을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 차례다. 들머리는 불로전통시장.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 옆 골목을 따라 수백미터 더 들어가면 수십 개의 커다란 무덤들이 보인다. 올록볼록 크고 작은 봉분들이 만들어내는 물결 위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답답했던 가슴은 시원해지고, 한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에 마음은 평화로워진다.
고분 사이로는 부드럽고 완만한 산책로가 나 있다. 좁은 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어가며. 이 땅에 묻혔을 옛사람을 상상해 본다. 사부작사부작 언덕을 오르면 거대한 무덤이 낯설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낸다. 1500여년 전 이곳에 묻힌 옛사람의 삶과 시간이 발걸음마다 사색과 여유를 만들어 내는 듯하다.
| 대구 불로동 구분군은 5세기경 신라 시대에 조성된 무덤이 200여 개나 모여 있다. 크고 작은 고분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반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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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불로동 구분군은 5세기경 신라 시대에 조성된 무덤이 200여 개나 모여 있다. 크고 작은 고분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반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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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에는 지름 21~28m, 높이 4~7m에 이르는 크고 작은 봉분 210여 기가 능선을 따라 가득하다. 고분에서는 금귀고리, 유리구슬 목걸이를 비롯한 장신구와 화살촉, 도끼 등이 발견됐다. 무덤 주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출토된 유물로 보아 4~5세기경 이 일대에 살던 부족의 지배 세력 무덤으로 추정된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지만, 정상부에 오르면 신기하게도 대구 도심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멀리 팔공산부터 이월드 83타워, 앞산, 월드컵 경기장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겹겹이 옛 무덤 너머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빼곡한 빌딩들이 대비되는 이색 풍경이다.
불로동 고분군의 하이라이트는 저녁노을이다. 해가 초여름의 오후, 1500년 시간을 거닐고 마주하는 노을은 특별하다. 옛 무덤 너머 붉게 물들어가는 도심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이면 늦은 오후에서야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해 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봉분은 한층 부드럽고 따뜻해 코로나로 지치고 모났던 마음이 한결 둥글어지고 위로가 된다. 낮과 밤이 공존하고, 옛 시간과 현재의 삶이 어우러지는 이곳의 풍경을 오래도록 마음에 새긴다.
| 대구 불로동 구분군은 5세기경 신라 시대에 조성된 무덤이 200여 개나 모여 있다. 크고 작은 고분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반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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