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희의 이게머니]'0%' 금리 덕에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벌었다

by최정희 기자
2021.06.28 06:00:00

① 초저금리에 가계도, 기업도 빚투
② 소득 < 빚 < 자산 순으로 증가
③ 저금리 수혜 고신용자에 집중

4월 29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작년 코로나19는 일부 사람들에겐 빚을 내 ‘자산’을 불릴 기회를 줬다. 소득 대비 빚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채무상환부담이 커졌으나 주택, 주식 등 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여차하면 자산을 팔아 빚을 갚을 능력치는 높아졌다.

하지만 ‘빚투’의 성공 기회는 주로 고신용자에 집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살림살이가 팍팍해져 빚으로 버텨야 했던 자영업자 수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일부는 은행 문턱이 높아 제2금융권으로 발을 돌려야 했다. 코로나19가 만든 빚잔치가 연내 기준금리 인상, 원리금상환유예 조치 종료 등과 함께 폭탄으로 다가올 위험이 커졌다.

한국은행의 사상 최저 기준금리(연 0.5%)는 가계·기업 모두에게 손쉽게 빚 낼 기회를 줬다. 한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기업 등 민간신용(부채) 규모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16.3%(3월말)로 1년 전보다 무려 15.9%포인트 증가했다.

명목GDP는 작년 이후 0~1%대(분기, 전년동기) 증가하는데 그친 반면 민간신용은 7~9%씩 불어난 영향이다. 특히 올 1분기 민간신용은 9.4% 증가, 2009년 2분기(11.1%)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가계신용(가계·비영리단체·영세자영업자 대출 등도 포함)은 올 1분기 10.9% 늘어나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년 3분기(11.4%)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을 보였다. 가계빚만 문제가 아니다. 기업신용 증가율은 작년 내내 9%대를 보이다 올 1분기 7.9%로 둔화됐으나 증가율이 최근 5년(2015~2019년) 평균치(4.6%)보단 높은 수준이다.

명목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과 기업신용 비율은 3월말 각각 104.7%, 111.6%로 집계됐다. 가계·기업 빚이 장기추세 수준으로만 증가했다면 이 비율은 98.9%, 103.6%로 떨어진다. 장기추세 수준과 실제 신용비율간 차이가 벌어질수록 금융불안이 커진다고 보는데 이 갭의 차이가 가계신용은 5.8%포인트로 역대 최대치를 보였다. 기업신용 갭은 8.0%포인트로 2009년 3분기(10.6%포인트) 이후 가장 크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 1분기에도 빚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빚이 많아지더라도 갚을 능력이 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득은 작년 이후 분기별로 2~3% 천천히 증가하는데 가계빚은 4~9%대 급증하면서 채무상환능력이 떨어졌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가계대출과 신용카드 빚 합산)비율은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160%대를 오갔으나 올 1분기 171.5%로 1년 전보다 11.4%포인트 상승했다. 1분기 처분가능소득을 직전 3개년의 연간 국민총소득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아직은 추정치에 불과하나 사상 처음으로 170%를 넘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하락했다는 점이다. 3월말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44.7%로 2.9%포인트 하락했다. 저금리가 빚을 늘렸지만 동시에 주식 등 자산 가격도 끌어올린 영향이다. 빚 늘어나는 속도보다 자산 가격이 더 빠르게 상승했다는 얘기다. 가계신용(가계·비영리단체·영세자영업자 대출 등도 포함)이 1분기 10.9% 늘어나는 동안 가계자산은 무려 18.9%나 급증했다. 통계 전체적으로 보면 빚을 내 주택, 주식 등에 투자하는 ‘빚투(빚을 내 투자)’에 성공한 셈이다.

소득으로 빚은 갚기 더 어려워졌으나 주택, 주식 등 자산을 팔아 빚을 갚을 능력은 더 커진 셈이다. 그러나 한국은행 등 전 세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이 쪼그라들어 자산가격이 조정을 받게 되면 빚 갚을 능력도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빚투,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투자) 등으로 돈을 싸게 빌려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그나마도 신용등급이 높은 ‘고신용자’에만 해당되는 얘기였다. 코로나19에 가장 피해를 본 자영업자는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워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빚의 구조 또한 양극화됐다.

작년 고신용자(나이스 신용평가 점수 840점 이상)의 신용대출은 무려 21.2%(전년동기비)나 늘어났다. 올 1분기에도 19.6%나 대출이 늘었다. 고신용자는 대출을 받아 주택, 주식 등 자산을 매입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택가격 상승률과 고신용자 신용대출 증가율 간 상관계수가 2019년까지만 해도 0.23에 불과했으나 작년엔 0.75까지 높아졌다. 규제로 인해 주택담보대출이 제한되자 신용대출을 통해 주택 등 자산에 투자했다는 얘기다. 반면 저신용자(664점 이하)는 작년 대출이 10.7% 감소했고 1분기에도 9.7%나 줄었다. 전체 가계 신용대출로 보면 고신용·고소득자의 비중이 3월말 75.5%, 63.2%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말(73.1%, 62.5%)에 비해 더 증가, 부채의 질은 개선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로 살림살이가 가장 팍팍해진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대출 및 가계대출 일부)의 부채 질은 나빠졌다. 자영업자 대출은 저소득층(1분위, 2분위)일수록 증가율이 높았다. 1분기, 2분위의 자영업자 대출 증가율은 1분기 각각 26.0%, 22.8%를 기록, 2분기 연속 20%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나머지 소득 계층의 대출 증가율이 10%대인 것과 대조된다.

고금리 대출 증가세도 빠른 편이다. 은행권 대출 증가율은 1분기 16.2%를 기록했는데 비은행권 24.4%로 더 빠르게 증가했다. 도소매, 숙박음식, 여가업종 대출의 3분의 1이 비은행권이었다. 10%안팎의 고금리 대출 비중도 전체(831조8000억원)의 3월말 5.2%(43조6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빚을 진 자영업자(3월말 71만7000명)의 절반(34만5000명) 가량은 2019년 코로나19 이전까진 빚이 없었다가 작년에 신규로 빚을 내야 했다. 그만큼 자금 압박이 컸단 얘기다.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원리금상환유예(9월 종료) 등의 조치로 0.24%(개인사업자대출 기준)에 불과하지만 연체 가능성이 높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저신용인 취약차주 비중은 대출액 기준으로 9.2%(3월말)에 달한다. 한은은 “경기 흐름은 정부의 지원 조치가 종료되더라도 연체율, 취약차주 비중의 상승폭을 제한할 것”이라면서도 “금융지원 조치 종료, 시장금리 상승 등에 대출 연체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