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혜미 기자
2020.05.08 05:00:00
재난지원금 내수소비 진작 목적도
담배 등 기호품 소비 비난은 과도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작년 이맘때쯤 친구와 단둘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대학생 조카에게 얼마큼 용돈을 쥐어준 적이 있다. “현지에서 먹고싶은 것 사먹고, 공연도 보고 충분히 경험하고 오라”고 했다.
일주일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조카는 행복해 보였다. 뭐가 제일 좋았느냐고 묻자 가방 속에서 주춤주춤 꺼낸 것들은 이런저런 소품들이었다. 그는 좋아하는 캐릭터로 한껏 꾸며진 머그컵과 사탕, 과자, 도자기로 구워진 작은 인형들을 꺼내보이며 “너무 귀엽죠?”를 연발했다. 대놓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사실은 꽤나 실망스러웠다.
지난달 경기도를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의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이뤄지면서 사용처가 적절했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앞서 지자체들이 지급한 지원금의 사용처를 분석해보니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해 정부가 제공하는 ‘국민 안전망’이라는 당초 지급의도와는 달리 사용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신한카드가 3~4월 경기도 지역의 소비내역을 분석한 결과 지난 4월4주차에는 의류업종 가맹점 소비가 3월1주차 대비 114% 늘었다. 특히 스포츠와 패션, 미용, 외식 등의 업종에서 소비가 많이 증가했다. 이와 별개로 슈퍼나 편의점 등에서 쌀 같은 생필품보다는 담배 같은 기호식품을 구입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
미국은 아예 소득 7만5000달러 이하인 경우 1인당 1200달러를 지급하면서 사용처나 사용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했다.
문화의 차이인지 마켓워치 등 외신에서 소개하는 ‘재난지원금 잘 사용하는 방법’에는 부채상환이나 저축 등의 내용이 버젓이 소개되고 있다. 주식에 투자하라는 조언도 나오지만 전혀 이상하게 취급받지 않는다. 미국 현지에 거주하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통장에 넣어둔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미국 방식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재난지원금 취지대로 코로나19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져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 재난지원금을 쓰다면 가장 적합한 사용처다. 그러나 코로나에도 생계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재난지원금 지급 목적 중 하나는 소상공인 살리기 아니었던가.
집앞 슈퍼에서 사용하기만 한다면 쌀을 사든 담배를 사든 슈퍼 주인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4500원짜리 담배 한값을 팔면 418원이 남는다는데, 일반 소매점포에서 10% 가까운 마진을 남길 수 있다면 그리 나쁜 일도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누군가에게는 피부관리를 위해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이 치약을 사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일 수 있다. 조카에게 있어서도 해외여행에서 현지음식 한 번 더 먹는 것보다 우리나라에 없는 캐릭터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더 큰 만족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돈을 지급한 사람의 의도에는 맞지 않지만 다른 차원의 소비가 이루어졌고, 결국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난지원금의 몫을 다한 것이다. 나라가 돈을 주기는 했지만 어차피 국민들이 낸 세금이 재원이다. 어디에 쓰든 어차피 내수소비다. 과도한 통제는 되레 소비 부진 등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