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국민연금 책임투자 지지부진…투자 비중 줄고 죄악주 담고

by박정수 기자
2019.08.19 05:40:00

사회책임투자 비중 감소세…11.4%→9.1%
연구진 5년 내 30%까지 확대 제시…“증시 부진으로 규모 감소”
모호한 잣대로 직접투자에서는 이른바 ‘죄악주’ 투자
해외 연기금과 같이 네거티브 스크리닝 직접 투자에도 적용해야

[그래픽=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국민연금기금(이하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SRI)가 줄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국내 책임투자 문화 정착을 주도해야 한다는 역할론이 컸지만 국민연금은 오히려 책임투자 비중을 줄이는 추세인 것이다. 특히나 국민연금은 직접투자에서 이른바 ‘죄악주’ 투자를 늘려 책임투자 본연의 취지를 살리지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책임투자는 환경, 사회, 윤리경영, 지배구조 등을 고려해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통해 장기 성과를 안겨줄 것이란 분석에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사회투자책임이 주요 투자 기준으로 부상했다 .

18일 국민연금 책임투자 현황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주식 위탁운용 가운데 책임투자형 펀드는 총 4조5788억원 수준이다. 2017년 말 6조8775억원과 비교하면 2조2990억원(33.42%)이나 줄었다. 같은 기간 국내주식 위탁운용 전체 규모가 60조2198억원에서 50조354억원으로 16.91%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책임투자형 펀드 비중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2006년부터 민간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해 책임투자 펀드 위탁운용을 하고 있고 기금본부가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장기적으로 위험의 큰 증가 없이 시장 대비 초과수익 획득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운용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위탁펀드는 수익성 등 반기 종합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자금을 추가배분·조정하는데 책임투자 펀드는 성과가 뛰어나지 않아 규모가 크지 않다”면서 “작년은 국내 증시 부진에 따라 책임투자 규모가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3년 추이만 봐도 책임투자형 펀드가 국내주식 위탁운용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13.7%, 2017년 11.4%, 2018년 9.1%로 꾸준히 감소세를 보인다. 더구나 2017년은 코스피가 440포인트 이상(2026.46→2467.49) 오르며 21.76%의 상승률을 보였음에도 책임투자 비중은 줄었다.

또 2017년 말에만 해도 ‘책임투자·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연구’ 용역을 맡은 고려대 산학협력단 연구진은 중간보고를 통해 10% 수준의 책임투자 위탁펀드 규모를 향후 1~2년 내에 20%까지 늘리고 3~4년 내에는 25%, 5년 이후 30%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수익성 부진을 이유로 책임투자 규모를 줄이는 추세이나 정작 국민연금은 펀드 벤치마크 지수만 제시하고 기준 대비 수익률을 웃도는지만 주로 확인한다”며 “책임투자 활성화와 함께 수익성 향상을 위한 방안도 함께 마련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아직 연구진의 안을 토대로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만들고 있다”며 “세부적인 안이 나올 때까지는 구체적인 사항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직접투자에서는 이른바 ‘죄악주’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국민연금이 내놓은 책임투자를 고려하는 자산군의 투자현황을 보면 술, 담배, 도박 등과 관련된 죄악주를 작년에 새로 담았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업체인 GKL 지분은 11.59%에 달하며 내국인 전용 카지노업체인 강원랜드 지분은 6.88% 규모다. 이외에도 대표적인 담배 주식인 KT&G(9.99%), 주류업체인 하이트진로(5.06%) 등을 지난해 새로 편입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책임투자와 관련한 국내 주식 액티브 직접 운용은 지난해부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종목 분석 등급을 참고해 운용에 적용하고 있다”며 “직접 투자는 술, 담배, 도박 관련 주식의 투자를 금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주식 액티브 직접 운용 기준을 보면 신규 종목 편입 검토 시에는 기업 ESG 평가 결과 확인, 하위등급(C, D)일 경우 조사보고서 작성하도록 하고 투자 종목 점검 시에는 기업 ESG 등급이 하위(C, D)임에도 벤치마크(BM, 기준수익률) 비중보다 높게 투자한 경우 검토 의견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이 위탁사에 제시한 투자지침을 보면 술, 담배, 도박 관련 주식을 명확히 운용대상에서 제한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주식관련 증권 및 기업어음(CP) △주가지수선물 등 파생상품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집합투자증권 등 실적배당금융상품 일체 △발행주식수 5만주 이하 주식 등 총 8개 항목이 운용대상 제한에 해당한다.

한 연기금 CIO는 “현재 국민연금이 책임투자 자산군을 어느 범위까지 확대할지에 대한 문제와 선진국이 이용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에 관한 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해외 연기금과 같이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직접 투자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은 ESG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산업·기업을 포트폴리오 등 구성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노르웨이(NBIM), 스웨덴(AP) 등이 이를 책임투자에 활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조만간 발표될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에 죄악주 등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될지는 아직 모른다”며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중으로 지금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사항을 밝힐 수는 없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7월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오는 9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