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 VS '서울변회' 힘겨루기에 변호사 사회 두쪽

by전재욱 기자
2016.04.04 06:30:00

변호사 자격 좌우하는 권한놓고 벌인 내부 대립
사법정책 견해차가 감정대립으로 번진 모습
"국민 인권 옹호와 회원 권익 뒷전" 비판
"다양한 의견 내는 게 오히려 건강한 현상" 긍정평가도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왼쪽)과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을 둘러싸고 인권침해 논란이 뜨겁던 지난 2월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는 새누리당에 전부찬성 의견을 담은 검토의견서를 건넸다.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인권보호에 대한 책무가 있는 법조인 단체로서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 인권위원회는 테러방지법이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헌요소가 있다며 대한변협과 대립각을 세웠다.

대한변협과 서울변회 등 지방변호사회와의 관계는 일반적인 협회와 성격이 다르다. 먼저 협회를 구성한 뒤 지역별로 지부를 두는 게 일반적인 설립 절차지만 대한변협은 각 지방변회가 전체 변호사를 대표할 단체를 구성할 목적으로 연합해 세웠다. 태생이 산하지부라기보다는 주주 개념에 더 가깝다. 지방변회는 회장도 별도 선거를 거쳐 뽑는다. 서울변회는 14개 지방변회 중 최대 회원 수를 자랑한다. 대한변협 회원 2만여명중 75%인 1만 5400명이 서울변회 소속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 대한변협과 서울변회간 사이가 갈등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갈등의 시작은 작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1월 김한규 서울변회 회장, 2월에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이 취임한 이래 양 단체는 주요 현안마다 마찰을 빚으면서 변호사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놓고 있다. 하창우 회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2007~2009년까지 서울변회 회장을 지냈다. 경원대 법대를 졸업한 김한규 회장은 서울변회 부회장을 거쳐 회장직에 올랐다.

변호사법상 변호사로 일하려면 지방변회를 거쳐 대한변협에 변호사 등록 신청 및 개업 신고를 해야 한다. 지방변회는 접수한 등록 및 개업 신고서를 대한변협에 올려보내면서 찬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구속력은 없다. 다만 절차상 대한변협은 지방변회가 등록신청 및 개업 신고서를 올려야 심사가 가능하다.

차한성 전 대법관 변호사 개업 신고를 계기로 대한변협과 서울변회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대한변협은 지난해 3월 서울변회가 올린 차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서를 반려했다. 하창우 회장이 회장 선거 당시 내걸었던 전관예우 근절 공약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다. 서울변회는 대한변협이 신고를 반려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다시 되돌려보냈다. 대한변협은 끝내 차 전 대법관의 개업신고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길거리 음란행위로 사직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서울변회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하자 서울변회는 ‘자숙하라’며 신청을 반려했다. 지방변회는 내용 보완 등을 이유로 변호사 등록 신청서를 반려할 수 있다. 서울변회는 6개월 뒤인 작년 9월에야 김 전 지검장의 등록 신청서를 대한변협에 전달했다. 대한변협은 등록심사위원회를 열어 김 전 지검장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했다.

‘성 접대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과 온라인에 악성 댓글을 수천개 달았다가 물의를 빚고 물러난 이모 부장판사의 변호사 등록 때도 두 기관은 충돌했다. 서울변회는 두 사안 모두 변호사 등록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대한변협은 변호사 등록을 허가했다.



대한변협과 서울변회는 사법정책을 두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 마찰을 빚기도 했다. 상고법원 설립문제가 대표적이다. 대한변협이 상고법원 설치는 대법관 수를 제한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꼼수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던 작년 5월, 서울변회는 상고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며 상고법원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공식발표했다. 대한변협의 상고법원 도입 저지노력에 찬물을 끼얻은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하 회장과 김 회장이 서로 상대방을 동반자가 아니라 경쟁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두 기관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같은 경쟁 구도가 감정싸움으로까지 불거진 게 검사평가제다. 지난 1월 대한변협이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표한 검사평가제는 표본 부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논란을 빚었다. 첫 시행인 만큼 회원인 변호사들의 참여율에 성패가 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대한변협은 서울변회에 회원들의 평가제 참여를 독려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변회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결국 설문조사는 1079건(중복 포함)에 그쳤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서울변회의 협조를 얻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고, 서울변회 관계자는 “대한변협 정책은 대한변협이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같은 양 기관의 대립은 변호사 권익을 대변하고 공익을 추구해야 할 법조단체로서 역할과 위상을 훼손할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서초동에서 일하는 한 변호사는 “변호사 개업을 좌지우지하는 권한을 두고 벌이는 다툼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두 기관이 서로 존중해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게 아쉽다”며 “두 기관의 갈등이 법조시장 불황으로 생계를 걱정하는 변호사들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양 기관의 대립이 오히려 건강한 현상이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 서울변회 임원을 지낸 한 변호사는 “과거에도 두 기관은 늘 갈등하고 긴장관계를 유지했지만 다양한 의견을 내면서 사회를 환기하는 역할을 했다”며 “매번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