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개편 없이 '스마트그리드' 신산업 육성? 업계 "공염불"

by최훈길 기자
2016.03.30 06:00:00

5000여억원 투자 스마트그리드 사업 올해부터 착수
값싼 산업용 요금, 한전 판매독점 하에서 '예산낭비' 우려
업계 "신산업 키우려면 판매시장 개방, 요금체계 개편 필요"
산업부 고민 "요금 인상하면 신산업 좋은데 주력산업 피해"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정부가 현행 전기요금 체계를 유지한 채 신산업 육성에 나서는 것이 실효성 없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전이 독점 판매하고 턱없이 낮게 책정된 현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에선 신산업이 크기 어렵고 정부 지원도 세금낭비만 초래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9일 한국전력(015760)공사, SKT, KT 등과 ‘스마트그리드 확산 정책협의회’를 열고 올해 전국 13개 지역에서 진행하는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에 착수했다. 사업 예산은 올해부터 3년간 5668억원(국비 660억원)에 달한다.

스마트그리드는 기존 전력망에 IT 기술을 접목한 차세대 지능형 전력 인프라다. 일례로 스마트그리드 사업자(SKT 등)는 전력판매 사업자(한전)로부터 전력정보를 받아 통제관제 센터를 통해 다른 업체들이나 소비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전기요금 등 전력 정보를 제공한다.

업체들이나 소비자들은 이 정보를 토대로 전기요금이 싼 시간대에 공장을 가동하거나 전력을 전기차 등에 저장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가 활성화될수록 ESS(에너지 저장장치), 전기차, 태양광 등 신산업도 동시에 클 수 있다는 게 정부 전망이다.

그러나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신산업 시장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현 전력시장 구조에서는 사업성을 찾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한전이 판매를 독점해 값싼 전기를 공급하는 상황에서 굳이 스마트그리드를 통해 전력정보를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찾을 업체나 소비자도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 전반적인 시각이다.



이 때문에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대한 예산낭비 우려도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출신인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판매시장 구조에서는 정부 지원이 끊기면 살아남을 수 있는 신산업 사업·업체는 없을 것”이라며 “후손에게 부채를 떠넘기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한전의 요금체계를 바꾸고 전력판매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지금은 산업용 전기요금이 너무 싸다 보니 일부 업체들이 전력을 너무 많이 쓰는 실정”이라며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릴 경우 스마트그리드 등 신산업 시장이 획기적으로 늘고 전기도 아껴 쓸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최근 국내외 전력수급 현황 및 시사점’ 3월 보고서를 통해 “2009년부터 연중 전력피크가 동계에 발생해 수요관리 측면에서 동계 전력요금을 하계보다 높일 필요가 있다”며 겨울철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산업부는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신산업 업계에 좋을 지 몰라도 주력 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지원 사업이 2~3년 진행되면 신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전기요금 개편이 신산업을 위한 필수요건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