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열전②]설 앞둔 공기업, 요즘 애창곡은 '아~옛날이여'

by최훈길 기자
2016.02.08 07:00:00

과거엔 명절 앞두고 176만원 상품권 등 복지비 ''펑펑''
요즘엔 성과연봉제·구조조정 앞두고 뒤숭숭..''비상경영'' 선포
"그래도 공기업이 낫다" 의견도..이직률 ''0%'', 입사경쟁률 ↑

지난해 2월12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에서 은행직원들이 시중은행에 제공할 설 자금을 방출했다.(사진=김정욱 기자)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 공기업에 근무 중인 40대 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항변이었다. 명절을 앞두고 성과급이나 상품권을 펑펑 나눠줬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얘기다.

그동안 국정감사 ‘단골메뉴’로 오를 정도로 공기업의 복지비 지출은 상당했다. 2010년 국감 당시 김태환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사내복지기금을 이용해 전년도 한해에만 직원 1인당 577만원의 복지카드를 지급했다. 설과 추석 등 명절에는 직원 1인당 176만원 어치의 상품권을 지급하기도 했다.

장영희 미래희망연대 의원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는 2009년 기준 1인당 급여성 복리후생비를 620여만원 지급했다. 2009년 기준 가스공사의 부채는 17조8000억원, 부채비율은 344%로 당시 국내 자원개발 기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부채가 많아도 복지 비용에는 아끼지 않고 펑펑 썼던 셈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요즘 공기업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는 않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상반기까지 성과연봉제를 공기업 간부에서 직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적용대상 규모가 현행 7%에서 70%까지 대폭 늘어난다. 성과급 격차도 최대 1800만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경영평가에서 페널티가 부과돼 성과급이 깎이고 임원들은 물러나야 한다.

특히 산업부 산하 공기업 상황은 더 심각하다. 기재부는 에너지 분야 공기업(동서·남부·남동·서부·중부발전, 수력원자력, 석유공사·가스공사·광물자원공사)에 대한 기능조정을 검토 중이다. 산업부는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 관련 연구용역을 이르면 이달 마무리하고 에너지 공기업 3사에 대한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최근 취임한 공기업 사장들도 비장한 분위기다. 남부발전 윤종근 사장은 지난 1일 취임식 직후 ‘비상경영 선포식’을 열고 재무건전성 강화 등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석유공사 사장에는 민간 CEO 출신인 김정래 전 현대중공업 사장이, 동서발전에는 기재부 출신 김용진 사장이 취임했다. 이승훈 가스공사 사장은 신년사에서 “강력한 혁신”을 강조했다.

한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는 “요즘은 공기업 분위기는 한전과 비(非) 한전으로 나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한국전력(015760)공사는 작년 연간 매출액(연결기준, 58조9577억원)과 영업이익(11조3467억원)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저유가 시대에 한전에는 웃음꽃이 만발하지만 해외자원개발 에너지 공기업은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저성장, 경기 둔화로 30대 명예퇴직자까지 나오는 민간기업보다는 공기업 사정이 낫기 때문이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아무리 과거와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요즘에 공기업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부발전 공채 경쟁률은 128.4 대 1(2014년)에 달했고, 가스공사 이직률은 0.8%(2013년)에 불과했다.

고액 연봉도 여전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분석한 기재부 ‘2015년 공공기관 현황 편람’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대 공공기관장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올해 연봉 2억1210만원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았다. 직원 1인당 연봉은 한국투자공사가 1억384만원으로, 신입사원 초임 연봉은 항공안전기술원이 442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요즘 공기업들의 분위기를 보면 애창곡으로 ‘아! 옛날이여’를 열창할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공기업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묻지마·무조건 인기’를 보면 박상철의 트로트 ‘무조건’이 애창곡으로 어울리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