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신하영 기자
2015.07.14 06:30:00
한양대 생활비 지원 도입···250명에게 주거비·교통비 지원
학기 당 예산 1억···‘성적’ 대신 ‘가정형편·통학거리’ 고려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대학 3학년생인 박정화(25·여·가명)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마다 예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말을 포기하는 대가로 박 씨가 버는 돈은 한 달 40만 원 정도다. 박 씨는 이 돈을 대부분 주거비와 교통비로 쓴다. 함께 사는 친구 1명과 월세·공과금을 30만 원씩 나눠 내는 탓에 늘 생활비가 빠듯하다. 박 씨는 “주말에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사립대 연간 등록금은 평균 734만원이다. 저소득층 대학생들은 등록금 부담 외에 주거비, 교통비, 학원비, 식비 등 생활비 마련을 위해 주말과 저녁 시간을 헌납한다. 이 때문에 이들 중에는 ‘아르바이트→성적 저하→장학금 탈락’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년세대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대졸자가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쓰는 비용은 등록금을 포함에 1인당 평균 4269만원이다.
대학가에 성적 기준이 아닌, 가정 형편을 기준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는 ‘생활비 장학금’ 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13일 한양대는 2학기부터 성적이 아닌 가정형편을 기준으로 장학금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미생 장학금’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성적이 아닌 가정형편을 기준으로 장학금 지급대상을 선정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일부 대학에서 학비 외 생활비까지 장학금으로 지원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 성적을 기준으로 장학생을 선발한다. 미생 장학금은 ‘미래를 위한 생활비 장학금’의 약칭이다. 한양대 측은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생활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에 시달리지 않고 학업과 취업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 같은 장학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한양대 관계자는 “경제적 여건을 고려한 주거비·교통비 지원이 필요하다는 학생회 의견을 받아들여 2학기부터 생활비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이 배정한 미생 장학금 예산은 학기당 1억 원이다. 주거비와 교통비 지원에 각각 5000만원이 지원된다. 한양대는 2학기 개강 직후인 9월 초 장학금 신청을 받아 10월 중 250명의 학생을 선정할 방침이다. 주거비는 50명의 학생을 뽑아 1인당 100만원을, 교통비는 200명을 뽑아 1인당 25만원씩 지원한다. 선정 기준은 주거비의 경우 가계의 소득분위를, 교통비의 경우 소득분위와 통학거리를 주로 반영해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
생활비 장학금 지급에 대한 수요는 매년 증가세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재단을 통한 등록금 대출액은 2011년 2조3622억원에서 지난해 1조7412억원으로 감소한 반면 생활비 대출액은 같은 기간 3231억원에서 6804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러한 수요를 반영, 생활비 장학금 도입을 고민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한양대에 앞서 경희대도 2013년부터 생활비 장학금을 운영하고 있다. 선발 심사에서는 신청자의 소득분위를 90% 반영한다. 올해 1학기에는 학생 115명을 뽑아 1인당 70만원씩 총 8050만원을 지급했다. 경희대 관계자는 “성적보다는 가계곤란 정도를 반영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며 “필요한 예산은 학내 식당·매점 수익 중 일부로 충당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도 지난해 성낙인 총장 취임 이후 1분위 이하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선한 인재 장학제도’를 만들었다. 올해 1학기에는 720명을 선발, 매달 3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 예산만 27억원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성적은 학사경고 수준만 아니면 된다”고 말했다.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들이 지원하는 장학금의 대부분 공부 잘하는 신입생을 뽑기 위한 학생 유치용”이라며 “장학금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성적보다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원하는 장학금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도 “생활비 장학금은 대학생들의 주거비나 교통비 부담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는 데 의미가 있다”며 “더 많은 대학에서 생활비 지원을 확대해 학생들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