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림왕이 세운 숲 왕국서 산림치유와 헌신의 의미 배운다

by박진환 기자
2024.06.25 05:30:00

■연속 기획-숲, 지역과 산촌을 살린다(7)
전남 장성 축령산 편백치유의숲, 작년 100대 명품숲 선정
독림가 임종국 선생이 평생에 걸쳐 편백나무·삼나무 조림
경제림육성단지로 지정… 지속가능한 산림경영기반 마련
생애주기별 산림교육·치유 등 다양한 산림복지서비스 제공

산과 숲의 의미와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 가치와 의미의 변화는 역사에 기인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한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렵고 힘든 50년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산림청으로 일원화된 정부의 국토녹화 정책은 영민하게 집행됐고 불과 반세기 만에 전 세계 유일무이한 국토녹화를 달성했다. 이제 진정한 산림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림을 자연인 동시에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본보는 지난해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을 탐방, 숲을 플랫폼으로 지역 관광자원, 산림문화자원, 레포츠까지 연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100회에 걸쳐 기획 보도하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축령산 정상 능선. (사진=국립장성숲체원 제공)
[장성=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전남 장성으로 가기 위해 차에 몸을 싣고 잠시 바깥 풍경을 보고 있었다. 고속도로 주변 산에는 푸른 나무가 빽빽하게 식재돼 있었고, 사방을 전부 둘러봐도 나무가 없는 산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민둥산으로 방치됐던 한반도의 산들이 어떻게 다시 울창한 숲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한 정부 주도의 치산녹화사업으로 오늘날의 산이 완성됐다고 배웠지만 정말 그럴까? 답은 장성의 축령산에서 들을 수 있었다.

치산녹화사업 이전에 이미 많은 독림가(篤林家)들의 헌신과 열정이 전국 곳곳에서 이뤄졌고, 여기에 정부와 지자체, 지역주민들의 노력과 동참이 수반되면서 전 세계에서 유일한 녹화사업의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었다. 독림가는 영림계획(營林計畵)을 작성해 모범적인 산림경영을 하며, 사회적으로도 신망이 두터운 사람 중에서 산림청장 ·도지사 ·시장 ·군수로부터 독림가 인정서를 받은 사람을 말한다. 독림가는 산림의 경영주체 ·규모 ·형태 및 실적 등에 따라 구분한다.

장성 축령산 치유의 숲. (사진=국립장성숲체원 제공)
장성 축령산 편백 치유의 숲도 한 독림가가 평생에 걸친 열정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숲이다. 해발 621.6m의 축령산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당시 모든 산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민둥산이 돼버렸다. 그러던 중 1950년대 중반 춘원 임종국(1915~1987년) 선생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임업선진국인 일본의 상황을 본 임종국 선생은 우리도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전남 장성군 서삼면 축령산 일대에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당시 한반도의 산에 있던 나무들은 거의 대부분 땔감으로 남벌됐고, 목재업자들에 의해 전국의 귀한 나무들이 거의 벌채됐다. 또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던 화전민들로 전국에 헐벗은 민둥산만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임종국 선생은 축령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전 재산을 팔아 나무를 키웠고, 키운 나무를 다시 산에 심는,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이어갔다. 가뭄이 오면 직접 지게를 지고 험한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물을 뿌렸다. 어린 편백나무는 자식처럼 보살폈다. 밤에도 횃불을 들고 양동이를 메고 산에 올라가 물을 주는 모습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었던 지역주민들을 서서히 변화시켰다.

이후 지역주민들은 임 선생과 함께 축령산에 나무를 심었고, 민둥산은 점차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한계는 명확했다. 전 재산을 나무심기에 쓴 임 선생의 재력도 바닥이 났고,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됐다. 빚은 더 이상 임 선생 혼자 감당할 수 없었고, 축령산은 그렇게 여러사람들의 소유로 넘어갔다. 마흔한살에 시작해 한해도 거르지 않고 심은 나무로 축령산 일대 700여㏊의 면적에 편백나무와 삼나무, 낙엽송 등이 울창한 명품 숲이 됐다.

춘원 임종국 선생이 묻힌 축령산 수목장. (사진=박진환 기자)
한평생 나무를 사랑한 임 선생은 숲으로 돌아갔다. 산림청은 그의 업적을 기려 숲 가운데 유가족과 상의해 임종국 선생과 그 부인을 위한 수목장을 조성했다. 당시 산림청과 유가족은 임 선생의 수목장에 걸맞는 수종을 찾기 위해 고심했고, 밀레니엄 트리로 선정된 느티나무를 최종 선정했다. 느티나무가 수호의 의미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 선생이 숲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알려졌다. 그는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된 동시에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한국의 조림왕으로 소개되고 있다. 축령산 중턱에는 ‘춘원 임종국 조림공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축령산 편백 치유의 숲은 2000년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에 선정됐다.

축령산 편백 치유의 숲은 입구부터 빽빽하게 들어선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방문객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다른 나무와 달리 20~30m가 넘는 키를 자랑하는 이 나무들은 반듯하면서도 곧은 형태로 장대한 숲을 이뤘다. 특히 편백에서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는 정신을 맑게 하는 동시에 모든 스트레스와 상념을 날렸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해충이나 병균, 곰팡이 등에 저항하기 위해 분비하는 방향성 항균물질이다. 피톤치드는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마음을 안정시켜 스트레스를 없애는 효능이 탁월한 것으로 확인됐다. 모든 나무는 피톤치드를 발산하지만 편백나무가 가장 많은 피톤치드를 낸다.

방문객들이 축령산 편백숲에서 맨발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국립장성숲체원 제공)
국립산림과학원이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축령산 편백나무에는 천식 치료물질인 ‘샤비넨’이 다량 함유돼 있다. 2시간 정도 숲길을 걸으니 정신과 몸이 달라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5대째 이 지역에서 거주하며, 현재 숲 해설사로 활동 중인 김상기 미래숲문화연구회 대표는 “임종국 선생과 지역주민들이 700여㏊의 산에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을 식재했다”면서 “축령산은 다른 산에 비해 흙에 영양분이 많아 편백이나 삼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여건이 됐다”고 설명했다.

축령산 편백 치유의 숲이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명품숲으로 자리잡았지만 숲이 사라질뻔한 위기도 있었다. 1990년대 초반 국방부가 이곳에 포병 연습장을 조성하려고 했고, 지역주민들이 연대해 이를 저지했다. 김 대표는 “임 선생과 주민들이 어렵게 조성한 숲이 1990년대 초 정부의 피탄지 조성 계획에 따라 사라질뻔 했다”며 “주민들이 집회 등을 통해 결국 지켜냈고, 이를 통해 숲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더 깊어졌다”고 전했다.

국립장성숲체원 방문객이 해먹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사진=국립장성숲체원 제공)
현재 축령산 편백 치유의 숲은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 위탁 관리하고 있다. 산림복지진흥원은 이곳에 국립장성숲체원을 조성, 다양한 숲 치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영암국유림관리소도 이 일대를 경제림 육성단지로 지정, 공익적 가치 증진과 함께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또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노령산맥권 휴양·치유벨트를 조성했다. 이에 앞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축령산·문수산 편백숲 공간재창조 사업을 완료했다. 현재 11.3㎞ 구간의 치유숲길과 치유필드, 명상쉼터 15개소, 안내센터 1동 등 생애주기별 산림교육과 산림치유 등 다양한 산림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역을 넘어 전국에서 사랑받는 숲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상호 국립장성숲체원 산림치유팀장은 “숲테라피와 해벅 등 힐링 그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예전에는 단기형 방문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회귀형 프로그램에 대한 문의가 많아 이에 대한 효과 검증을 위해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림의 공익적 혜택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최근 한국산지보전협회가 장성 축령산 편백숲에 대한 연구 결과, 경제적 파급효과는 이용객 30만 6890명, 생산유발 706억원, 고용창출 연간 591명의 효과를 기록했다. 산림(388㏊ 규모)의 공익적 기능 평가에서는 159억원으로 조사됐다.

축령산 편백숲길과 마을 사이에 설치된 우물터. 이 우물터는 1950년대부터 치산사업에 참여한 인부들이 이용했다. (사진=박진환 기자)
축령산 편백 숲에서는 ‘태백산맥’, ‘내 마음의 풍경’, ‘남부군’, ‘만남의 장소’ 등 영화를 비롯해 ‘왕초’, ‘태왕사신기’ 등 드라마가 촬영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어 마을에서 숲길로 연결되는 입구에는 작은 우물이 방문객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김상기 대표는 “1950년대 후반부터 어느 정도 자란 묘목을 이곳 축령산으로 옮게 식재했고, 이 우물터는 당시 임 선생과 인부들이 머물던 숙소 옆에 식수 등을 위해 조성한 곳”이라며 “20년 넘게 수많은 인부들이 머물던 숙소가 사라졌고, 지금은 우물터만 남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치산녹화의 성지와도 같은 축령산 편백 숲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인부들이 머물던 숙소를 다시 건립해 박물관으로 활용하길 바란다”며 “지역주민들이 이 산과 숲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역사를 고려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박물관 건립 사업을 추진해주길 바란다”고 거듭 요청했다. 그는 이어 “냉혹한 군사정권 시절에도 정부와 싸워 지켜낸 숲이라는데 주민들 모두 자긍심이 남다르다”고 덧붙였다.

축령산 편백 치유의 숲은 민둥산을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명품숲으로 만든 임종국 선생과 지역주민들이 만들고 지켜낸 숲이다. 그들이 수십년간 바친 열정과 헌신을 생각하며, 뭉클해지면서도 숙연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김상기 미래숲문화연구회 대표가 축령산 편백숲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